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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시골의 눈부신 사계절 보여주고 싶었죠”

등록 2018-02-26 04:59수정 2018-02-26 08:28

공들여 찾은 영화배경 의성
올림픽 컬링 덕에 먼저 떠 반가워

밥 잘먹는 태리, 농사 잘짓는 준열
강아지 오구는 카메라 체질

새달 출범 ‘든든’ 공동대표 맡아
여성영화인 위해 제몫 해야죠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임순례(58) 감독은 윤기 반질반질한 마룻바닥보단 구들장 깔린 뜨끈한 아랫목을, 예쁘게 차려놓은 디저트보단 막된장을 풀어 넣은 구수한 찌개를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다. 부스스한 머리에 운동화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재킷을 입는 게 낫나? 벗는 게 낫나? 하긴 뭐 그게 그거지”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그는, 정겨운 동네 이웃 같다. 4년 만의 신작 <리틀 포레스트>는 그를 닮았다. 힘겨운 삶에 지친 청춘에 인생의 쉼표를 권한다. “조금 쉬어가도 괜찮아”라고.

영화 개봉을 앞둔 22일 마주한 임순례 감독은 “전원생활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내 성향과 잘 맞고, 나도 (그렇게) 좀 살아봤으니 자신감도 있어 선뜻 연출을 맡게 됐다”고 했다. 담당 프로듀서에게 “촬영 내내 ‘그나마 텃밭 농사라도 지어 본 나니까 이 정도’라고 으스대기도 했다”며 웃었다. 임 감독은 2005년부터 양평으로 거처를 옮겨 동물들과 더불어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도시의 강퍅한 삶에 지쳐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김태리)이 어린 시절 친구들과 맛난 음식도 해 먹고 농사도 지으며 벌어지는 사계절의 이야기를 담았다. 경북 의성과 군위 일대에서 꼬박 1년 동안 네 번의 크랭크 인과 크랭크 업을 반복하며 영화를 찍었다. “중간중간 촬영을 쉬는 ‘방학’이 생겨서 좋긴 했어요. 그 시간 동안 밀린 일을 했죠. ‘카라’(동물보호시민단체) 일도 하고, ‘인천영상위원회’ 업무도 하고….”

영화 속 시골의 사계절은 눈부시다. 자연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는 혜원의 모습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젊은이들에게 시골의 사계절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농담으로 제작진끼리 그랬어요. ‘우리 젊은이들은 시골의 여름과 겨울밖에 몰라. 방학 때만 가니까’라고. 하하.”

그래서 장소 찾기에 공을 많이 들였다. 원래는 사계절이 뚜렷한 강원도를 1순위로 정했는데, 금방 포기할 수밖에 없었단다. “(자연이) 예쁜 곳엔 죄다 펜션이 들어서 있더라고요. 포기하고 점점 남쪽으로 향했죠. 그냥 세트를 지어야 하나 싶을 즈음 혜원의 집을 기적적으로 발견하게 됐어요. 아, 요즘 평창올림픽 컬링 때문에 ‘의성’이 핫하던데, 영화에서도 혜원이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이 마늘밭이에요. 중간에 나오는 산수유꽃도 의성 산수유 마을에서 촬영했죠.”

영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영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리틀 포레스트>는 순제작비 15억원 규모의 작은 영화다. 그런데도 충무로의 떠오르는 스타인 김태리·류준열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 “태리씨를 처음 만나 밥을 먹었는데, 깨작깨작할 줄 알았더니 너무 복스럽게 잘 먹는 거예요. 우리 영화에 먹는 장면이 많아 내심 ‘잘 먹는 배우’를 원했는데…. 준열씨는 재하 역에 어울리는 자연스럽고 순박한 느낌, 그리고 농사를 잘 지을 것 같은(웃음) 건장한 신체 조건이 맘에 들더라고요. 하하하.”

또 하나의 주연인 강아지 ‘오구’는 동물단체를 통해 입양된 ‘성견 오구’와 전국의 유기견 보호소를 뒤져 찾아낸 ‘아역 오구’가 촬영에 임했다. 특히 ‘아역 오구’는 ‘카메라 체질’이었단다. “시나리오에 ‘오구가 고개를 갸웃한다’라는 장면이 처음부터 있었어요. 근데 오구는 훈련견이 아니니 걱정을 했죠. 어느 날 피디가 오구를 태우고 운전을 하다 너무 졸려서 노래를 불렀는데 오구가 특정 멜로디에 고개를 움직이며 반응을 하더래요. 그래서 그 멜로디에 맞춰 ‘오~구~?’ 하고 부르며 촬영했죠. 이놈이 평소엔 말을 더럽게 안 듣다가 카메라만 돌아가면 원하는 대로 해줘요. 체질이야 체질.”

어느덧 데뷔 25년에 접어든 임순례 감독의 뒤엔 여전히 ‘한국의 대표 여성감독’이라는 꾸밈말이 따라붙는다. 지난 20년 동안 ‘남성 위주의 영화계’에 별로 변함이 없다는 뜻일 게다. 여성 감독의 진입이 여전히 힘든 것도, 영화 속 ‘여혐’이 논란이 된 것도, 성폭력 문제가 불거진 것도 다 이런 구조 속에서 비롯된 일이다. “한국 영화계가 100억~200억짜리 블록버스터에 매몰돼 있어요. 큰 영화는 대부분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게 되죠. 획일화되고 대형화되는 영화계 풍토는 여성 감독에게 불리해요.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 구축에도 불리하고요. 결국 관객에게도 ‘편식을 강요’하는 나쁜 구조죠.” 그는 <리틀 포레스트>가 한국 영화의 다양성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영화 <리틀 포레스트>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새달 출범하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린 임 감독은 요즘 ‘#미투 운동’을 보며 분노와 안도가 교차한다고 했다. “너무 늦었지만, 당연한 수순을 밟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나마 정권이 바뀌어 이런 분위기라도 형성된 게 아닌가 싶고요. 공론화하고 개선해 나가는 데 저도 제 몫을 해야죠. ‘든든’은 성폭력 문제뿐 아니라 출산·육아·경력단절 등 여성 영화인의 노동환경 개선 문제로까지 시선을 넓혀보려고 합니다.” 그의 말에 오랜 시간 영화계의 맏언니 자리를 지켜온 든든함이 배어 나왔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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