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궁합>에서 감초 역할을 맡은 배우 조복래씨가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배우 조복래(32).
이름만 들어서는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더 많겠다. 이렇게 설명하면? <명량>에서 이순신(최민식)에게 목이 베여 죽는 탈영병 오상구, <차이나타운>에서 지하철 물품보관함에 버려진 일영(김고은)을 팔아넘기는, 얼굴에 무시무시한 흉터를 지닌 탁, <쎄시봉>에서 통기타를 메고 그윽하게 노래를 부르는 가객 송창식, <탐정: 더 비기닝>에서 독특한 코스튬을 한 범죄자 이유노, <범죄의 여왕>에서 입만 열면 욕설이지만 속은 여린 고시원 관리인 개태로 나온…. 영화 좀 본 관객이라면 ‘아~ 그 배우?’라는 말이 나올 참이다.
맞다. 이제 더는 ‘충무로의 기대주’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작품에 얼굴을 내민, “듣기 좋은 말로 ‘신 스틸러’, 다른 말로 ‘조연’이라 불린다”는 조복래다.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인 <궁합>에서 감초 ‘이개시’ 역을 맡아 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한 그를 최근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마주했다.
“제가 5년 차의 짧은 경력에 견줘 작품은 꽤 했지만 딱히 스코어가 좋지는 않아서…. 촬영 순서로 따지면 데뷔작이 <명량>인데, 1700만이나 들었잖아요? 그때 복을 다 썼나 봐요. 최민식 선배님이 ‘첫 영화에서부터 목이 잘리니 불길한데?’라고 하셨어요. 정말 그 탓인가? 하하하. 이번 영화는 복 좀 받을까요?”
‘복이 들어온다’는 뜻인 ‘복래’라는 이름을 꺼내자마자 그가 내놓은 대답은 참으로 엉뚱했다. ‘왜 촌스러운 본명 대신 예명을 쓰지 않았냐’는 원래의 질문을 다시 던졌다. “좀 세련되게 생겼으면 예명을 썼을 텐데, 제가 촌스럽고 올드하잖아요? (외모랑 이름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하하하. 음악도 옛날 포크송을 좋아해서 ‘애늙은이’라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한 20년 전에만 태어났으면 대성했을 텐데.”
영화에서 주로 ‘센’ 역을 맡아 성격도 그런가 싶었는데, 실제론 순둥순둥, 느릿느릿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궁합>의 이개시와 제일 비슷하달까. “제가 유머가 좀 있는 편이라 ‘이개시’ 같은 코믹한 역할이 제일 자신 있긴 해요. 그런데 대학 1학년, 첫 연극을 할 때 제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관객들이 이유 없이 폭소를 터뜨리더라고요. 웃으면 안 되는 장면인데. 그게 트라우마가 됐어요. 그래서 영화에선 일부러 좀 우울한 역만 했죠.”
오래 참아서인가 보다. <궁합> 속 그는 물 만난 고기 같다. 말년(이수지)과의 티격태격 로맨스로, 방중술에 대해 늘어놓는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한다. 때론 사짜 느낌 나는 사주쟁이, 때론 방중술사, 때론 관상감 훈도(역법을 맡아 보던 관리), 때론 사건해결의 단서를 주는 조력자까지 ‘멀티맨’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성대모사를 잘해 고등학교 땐 ‘성우’를 꿈꿨다. 그래서 서울예대에 입학했는데, 학교 동아리 선배였던 장진 감독 눈에 띄어 <리턴 투 햄릿>, <서툰 사람들> 등 연극에 출연하며 연기에 입문하게 됐다. 장 감독과의 인연은 결국 그를 영화판으로 이끌었다.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은 배우의 길을 간다고 하는데도 아버지가 말리시기는커녕 ‘그래,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가 밝다’며 부추기셨어요. 하하하.”
조복래는 ‘잔재주’가 많다. 고교 밴드부에서 기타를 쳤고, 성악도 했다. 중학교 땐 복싱을 해서 프로 자격증도 있고, 외발자전거도 타고 태권도도 꽤 잘한다. 대학 땐 탈춤, 꽹과리, 장구도 섭렵했다. “입시 준비하면서 다른 친구들은 몇백만원씩 들여 재즈댄스, 무용 등을 배우는데 전 돈도 없고 특기도 없어서 조금씩 배웠어요. 복싱은 <더 파이팅>이라는 만화책 보고 멋져 보여서. 전 늘 배우는 것 자체가 즐겁더라고요.”
배우는 게 결국 남는 거다. 성악과 기타 실력은 <쎄시봉>에서 빛을 발했고, 그 덕에 고 김광석과 그룹 동물원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에도 출연했다. 태권도는 조폭 역을 맡은 <하이힐> 속 회전 발차기 장면에서 유용하게 써먹었다. <궁합>을 찍으면서는 어깨너머로 사주와 손금도 배웠단다. “제 손금 특이하죠? 알거지나 백억 부자가 되는 극과 극의 손금이에요. 전 사주는 안 믿어요. 어떤 역술인은 저보고 재능 없으니 평생 구두나 닦으라더군요. 하하하. 노력으로 운명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느리더라도 천천히, 조금씩.”
그는 올해 <궁합>에 이어 <도어락>으로 관객과 만난다. 막바지 촬영 중인 <도어락>에서는 주인공(공효진)을 열렬히 짝사랑하는, 그러나 그 집착이 화를 부르게 되는 남자 역할로 또 한 번 ‘신 스틸러’ 자리를 예약해둔 상태다. <궁합>의 자매품인 <명당>에서는 ‘이개시’와 비슷한, 소문 잘 내는 ‘뻐꾸기’ 역할로 특별출연한다.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 “글쎄요. 제가 ‘커서’ 뭐가 될까요? 하하하. 다행스러운 건 일거리가 끊이진 않는다는 점인데…. 맡은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결국 뭐가 돼도 돼 있겠죠? 그저 언제나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배우였음 해요.” 늘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지만, 그는 부지런히 영화판에 자신의 발자국을 꾹꾹 눌러 새기는 중이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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