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열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성소수자 투쟁·사랑 그린 ‘120BPM’
성소수자 투쟁·사랑 그린 ‘120BPM’
전 세계 평단을 사로잡은 퀴어 영화 두 편이 한국 관객을 찾아온다. 서정적인 감성으로 첫사랑의 아름다움을 다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성 소수자들의 투쟁과 사랑을 강렬한 필치로 그린 <120비피엠(BPM)>은 서로 다른 매력으로 관객을 공략한다. <콜 미…>는 지난 4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했으며, <120비피엠>은 지난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에 이어 이달 초 세자르영화제에서 작품상 등 6관왕에 올랐다.
■ 어떤 사랑이든 첫사랑은 아름답다…<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갑작스레 다가온 첫사랑은 뜨겁고 달콤하고 아프다. 동성 간의 사랑이라고 다르지 않다. 열일곱 조숙한 소년 엘리오(티머시 섈러메이)에게도 첫사랑은 열병처럼 시작됐다.
1983년 북부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 가족과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엘리오 앞에 스물넷 미국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가 나타난다.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온 올리버는 배우처럼 매끈한 외모와 신사적인 매너로 시골 처녀들의 가슴에 불을 댕긴다. 소녀들의 애정을 한몸에 받는 것에 대한 질투일까? 거침없는 자기표현에 대한 동경일까? 엘리오도 자꾸만 올리버에게 시선이 간다. 조심조심 맴돌기만 하던 둘은 마침내 서로의 ‘특별한 감정’을 깨닫게 된다.
안드레 애치먼(아시먼)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원작으로 한 <콜 미…>는 소박한 이탈리아의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엘리오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처럼 둘의 감정을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짚어낸다. 사춘기 소년의 서툴지만 들뜬 감정을 떨리는 손길과 섬세한 표정으로 표현해 내는 티머시 섈러메이의 연기가 놀랍다. 23살의 그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최연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두 주인공이 나란히 누워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라고 읊조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황홀경의 시간이다.
그 여름의 강렬한 태양처럼 서로를 비추던 사랑은 올리버가 떠나면서 결국 추억이 된다. 이들의 사랑이 끝내 순수하고 찬란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배려하는 엘리오의 부모 덕분이다. 아들의 특별한 사랑을 눈치챈 아버지는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소중한 감정이기에 한순간도 놓치지 말고 간직하라”고 조언한다. 뜨거운 태양, 풋풋한 청춘, 가슴 뛰는 첫사랑에 흠뻑 빠지게 할, 한 편의 시와 같은 영화다. 22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 심장이 뛰는 한, 치열하게 사랑하고 투쟁하라…<120비피엠> 1989년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정부의 에이즈 대책 강화를 요구하는 행동주의자 모임 ‘액트 업’의 활동을 그린 <120비피엠>은 로뱅 캉피요 감독의 경험에 기반했다.
‘액트 업’은 평화와 비폭력을 지향하는 에이즈 감염자의 권익보호 단체다. 이들은 감염자가 급격히 늘어도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정부와 치료제를 개발하고도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한정 시판을 하는 제약회사를 상대로 합법과 불법 사이를 줄타기하는 시위를 벌인다. 사회적 편견 탓에 시위가 주목을 받지 못하자 제약회사 사무실에 난입해 가짜 피를 뿌리고 드러누워 구호를 외친다. 마약 중독자들이 주사기를 돌려쓰는 것이 에이즈 감염의 주요 경로임에도 외면하는 정부를 규탄하고, 고등학교 교실에 뛰어들어 콘돔 사용을 권장한다.
활동가들 사이의 사랑도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새로 들어온 나탄(아르노 발루아)은 숀(나우엘 페레스 비스카야르트)과 사랑에 빠진다. 열정적으로 액트 업에 참여했던 숀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나탄은 “너여야만 했다”며 그를 헌신적으로 돌본다. 친구들이 하나둘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활동가들은 “네가 살기를 바라”, “침묵=죽음” 등의 구호를 외치며 도발적인 시위와 게이 축제를 이어간다.
영화는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책임, 죽음의 무게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삶의 찬란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축제처럼 즐기는 활동가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동성애자인 개인의 삶 자체가 정치적이어야 했던 그 시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유다.
끊임없이 서로를 탐닉하는 나탄과 숀의 애정 행각이 불편한 관객도 있겠다. 하지만 액트 업 활동가에게 사랑은 투쟁과 다르지 않다. 치열하게 세상에 맞서다가 해가 지면 자유롭게 춤추고 사랑을 나눈다. 120비피엠(BPM·Beats Per Minute)은 영화 삽입곡의 박자(비트)이자 세상에 맞서는 그들의 삶의 속도다. 15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120BPM>의 한 장면. 레인보우 제공
<120BPM>의 한 장면. 레인보우 제공
<120BPM>의 한 장면. 레인보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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