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 곡성, 해운대, 밀양, 경주, 파주, 부산….
공통점이 뭘까? ‘영화 좀 본다’하는 사람이라면 벌써 눈치챘겠지만, 이는 모두 지명 이름을 딴 영화 제목이다. 이렇게 실제 지명이 제목인 영화들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영화 내용에 따라 대중에게 도시의 이미지가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각인되기 때문에 지역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공포영화 <곤지암>이 소송에 휘말린 것을 계기로, 도시 이름을 제목으로 한 다른 영화들의 대응방식도 덩달아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 <곤지암>은 곤지암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한 체험형 공포영화다. ‘호러 타임스’라는 체험단 멤버 7명이 한밤중에 폐허가 된 병원에 잠입해 괴담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을 인터넷에 생중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역 여론은 좋지 않다. 앞서 경기도 광주시는 “곤지암 일대에 막연한 심리적 불안감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며 제목 변경을 요청했으며,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도 이에 가세했다. 또 병원 소유주는 제작사인 하이브미디어코프와 투자배급사인 쇼박스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영화사가 사유재산인 병원에서 무단으로 촬영한 것도 모자라 ‘대한민국 3대 흉가’ 등의 문구로 홍보 하며 허위정보를 퍼트리는 바람에 피해가 막심하다”는 주장이다.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곤지암>에는 ‘영화 속 장소·이름·사건 등은 허구’라는 문구가 시작과 끝부분에 두 번이나 삽입됐다. 정범식 감독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가처분신청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그런 문구를 넣었다”며 “영화는 그냥 영화로 즐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런 논란은 비단 <곤지암>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명을 제목으로 삼은 영화는 대부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687만명을 동원한 <곡성>(2016·나홍진) 역시 해당 지역의 반발을 샀다. 영화사는 여론을 수렴해 곡성이라는 제목 옆에 ‘곡하는 소리’라는 뜻의 한자(哭聲)를 병기한 포스터를 재배포하는 등 난리를 겪었다. 하지만 유근기 곡성군수는 논란을 역이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지역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역발상을 통해 대외적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우리 군으로서는 남는 장사”라고 주장하고, <곡성> 무대인사에 동참하는 등 영화를 이용한 지역홍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천만 영화 <해운대>(2009·윤제균)도 “재난에 취약하다는 이미지 탓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는 우려가 일부 제기됐다. 하지만 영화의 도시 부산답게 해운대구는 영화가 지역 홍보에 보탬이 된다고 판단했다. 해운대구는 해운대해수욕장, 미포방파제, 해운대시장 등 촬영장소에 포토존을 조성해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전국 230개 지자체에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해운대>를 많이 관람해달라’는 서한을 보내 홍보에 나섰다.
<밀양>(2007·이창동) 역시 아동 유괴와 살인 등을 다룬 탓에 초반엔 지역의 호응을 별로 얻지 못했다. 하지만 칸 국제영화제에서 전도연이 한국 배우로는 사상 처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밀양시도 태세를 전환했다. 촬영 뒤 없앴던 세트장을 복원해 관광명소로 삼고, 케이티엑스와 협조해 ‘밀양 철도관광 팸투어’ 상품에 촬영지를 포함했다. 이창동 감독과 배우 전도연·송강호에게 ‘명예 시민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영화계 안팎에서는 이런 ‘잡음’이 활용하기에 따라서 영화와 지역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정지욱 평론가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다 해도 법원은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기각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반면, 이런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면, 굳이 돈 들여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영화의 인지도는 높아진다. 영화가 흥행할 경우, 지역도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어 결국 윈-윈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짚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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