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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사리판 가족의 ‘웃픈 운동회’

등록 2018-03-22 17:32수정 2018-03-22 21:43

짝사랑에 배신당한 아이, 직장에서 해고된 아빠
돈 떼이고 백수된 삼촌, 태극기 들고 나선 할아버지
사회의 축소판 같은 가족 소동극
서로 반목해도 누군가의 가족들
영화 <운동회>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 <운동회>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9살 승희(김수안)는 학교 친구 대니얼을 짝사랑한다. 대니얼이 준비한 곰 인형 선물이 자신의 것인 줄 착각하고 좋아하던 승희는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개한다. 운동회에서 2인3각 경기에 출전하는 대니얼 커플을 이기기 위해 승희는 승부욕에 불타지만, 코를 파던 손으로 과자나 먹는 의욕 없는 짝꿍은 그런 승희 마음을 알 리 없다.

승희 아빠 철구(양지웅)는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동료들과 복직 시위를 할지 망설인다. 엄마 미순(이정비)은 쉼터 급식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중 젠틀하고 멋진 이사장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친구 집에 얹혀살며 영화 일을 하는 삼촌 민석(최혁)은 시나리오를 썼다가 영화가 무산되며 돈을 떼인다. 아내가 죽은 뒤 눈칫밥을 먹던 할아버지 순돌(박찬영)은 공짜 막걸리의 꾐에 빠져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아버지 연합’ 회원이 된다.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각자의 삶에만 급급했던 가족은 철구의 복직 시위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아빠는 해고 노동자, 엄마는 진보단체 자원봉사자, 삼촌은 용역 깡패, 할아버지는 ‘아버지 연합’ 회원으로.

영화 <운동회>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 <운동회>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처음엔 귀여운 소녀 김수안의 ‘짝사랑 분투기’로 보이지만, 사실 <운동회>는 우리 사회에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각 세대의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천덕꾸러기인 할아버지가 ‘아버지 연합’ 활동을 통해 우쭐해하는 모습에선 노년의 소외와 외로움이, 돈을 벌기 위해 용역 깡패가 된 삼촌에게선 열정페이의 희생양이 된 청년의 고통이, 해고 사실을 집에 숨긴 채 시위에 나선 아빠에게선 장년층이 직면한 실업의 무게감이 배어 나온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은 블랙코미디 영화인 셈이다.

이들이 한꺼번에 뒤엉켜 난장을 벌이는 마지막 부분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모습으로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든 알고 보면 그들은 결국 누군가의, 아니 우리 모두의 가족임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영화 <운동회>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영화 <운동회>의 한 장면. 리틀빅픽쳐스 제공
<운동회>가 장편 데뷔작인 김진태 감독은 “용역 깡패와 보수단체 회원과 시위 노동자가 한 프레임에 담긴 신문 속 사진을 보고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롱테이크와 풀샷으로 객관적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펄떡이는 캐릭터를 살려내고 시종일관 웃음코드를 잘 버무려낸 감독의 실력이 빛난다.

무리들과 치고받고 쫓고 쫓기던 가족은 “뭐 하냐”는 승희의 물음에 “운동회 하는 중”이라고 둘러댄다. 우리 사회의 대립도 그저 한바탕 시끌벅적한 운동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승희는 막상 운동회날 2인3각 경기 도중 짝꿍이 넘어지자 우승을 포기하고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켜준다. 어린 승희가 1등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은 것처럼 어른들에게도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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