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CGV압구정에서 열린 영화 <버닝> 제작보고회에서 배우 스티븐 연(왼쪽부터), 유아인, 전종서, 이창동 감독이 영화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미스터리’한 작품, 새로운 방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작품.”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에 대해 감독과 주연 배우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표현했다. 24일 오전 강남구 씨지브이(CGV) 압구정에서 열린 <버닝> 제작보고회에는 이창동 감독을 비롯해 유아인·스티븐 연·전종서 등 주연배우들이 함께 자리했다.
다음달 17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버닝>은 이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자 세 번째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앞서 이 감독의 연출작인 <밀양>(2007)은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시>(2010)는 각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에 <버닝>이 또다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라는 명성을 전 세계에 재확인시킨 이 감독이 과연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이 감독은 “칸 영화제가 우리 영화를 알리고 평가를 받는 데 가장 효과적인 자리라고도 말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3명의 배우가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고 평가받는 자리이자 경험이라는 점 때문에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버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이자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강렬한 통찰력을 담은 작품으로 알려졌다.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로부터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다.
이 감독은 “이번 작품은 그 자체로 미스터리한 영화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 속할 수 있지만, 이에 머물지 않는다”며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 영화 자체에 대한 미스터리로 확장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 이후 8년 만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나에게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듯하다”고 웃으며 “오랜만에 젊은 사람들과 작업했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라 가능하면 제 나이를 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전작 <시>까지는 필름 작업을 고수했던 이 감독은 <버닝>부터 디지털 촬영으로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새벽녘의 어슴푸레한 태양빛, 해질녘의 노을,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모습 등 인공적인 연출이 아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영상미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이 감독은 “첫 번째 디지털 작업이라는 이야기가 민망하다. 제가 옛날 사람이라는 뜻 아니겠냐”고 웃으며 “필름 영화를 사랑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필름 작업을 선호했지만, 막상 디지털로 작업을 해보니 렌즈와 카메라의 기술이 높아져 인공적인 조명 없이 거의 모든 촬영이 가능하고, 필름보다 맨눈으로 보는 느낌에 가깝더라. 역시 기술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하루키라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이라 이 감독이 어떻게 이를 각색해서 담아낼지도 주요 관심사였다. 그는 “원작을 택한 건 작품 외적인 개인적 계기가 있었다. <시> 이후로 긴 시간 동안 제가 고민했던 문제들과 연결된 지점도 있었다”며 “원작이 무엇이든, 저는 저대로의 고민을 안고 독자적으로 영화화했다는 점을 말씀 드린다”며 말을 아꼈다. 이어 “작업을 하며 목표와 계획에 따라 만드는 게 아니라 영화 자체가 스스로 만들어지는 느낌,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느낌을 가지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배우들은 세계적인 거장인 이창동 감독과 함께 작업한 데 대한 소감을 밝히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유아인은 “제 주제에 뭘 선택을 하겠나(웃음) 그냥 감독님이 불러주셔서 하게 됐다”며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자유로운 시나리오였다. 한 편의 소설책을 보는 듯 상황이나 인물의 감정묘사가 섬세하고 디테일했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이창동 감독이 너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스티븐 연은 “<옥자>를 찍은 뒤 한 예능에 출연해 함께 하고픈 감독으로 이 감독님을 꼽았는데, 마치 운명처럼, 마술처럼 기회가 왔다”고 회상하며 ”벤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진짜 벤이 돼서 즐겁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번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어떨까?)”이라는 농담을 던지는 여유도 보였다.
<버닝>으로 처음 연기에 도전한 신인배우 전종서는 “(감독님과 작업하게 돼) 영광이다. 해미를 연기하기 위해 마임을 배웠는데,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해미라는 캐릭터에 쉽게 접근하기 위한 방법으로 감독님이 권하셨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전종서에 대해 “이런 원석이 어디 있다 나타났나 싶었다. 영화 속에 어느 배우도 쉽게 연기할 수 없는 신이 3~4 장면 정도 있는데, 정말 잘 해줬다”고 극찬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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