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1개!’
마블 10년의 역작으로 불리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개봉 첫날 역대 최다 스크린 수를 기록하면서 또다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역대급 예매율에서 볼 수 있듯 관객의 선택을 존중한 배정”이라는 주장이 나오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문화적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국회에 계류 중인 ‘개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영비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힘을 얻을지도 주목된다.
25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상영 현황 정보를 종합하면, 이날 개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스크린 수는 총 2461개로 역대 최대다. 상영관 183개를 보유한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씨제이씨지브이(CJ CGV)는 이 영화에 978개, 롯데시네마는 773개, 메가박스는 577개의 스크린을 배정했다. 독과점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한 기준인 상영 횟수도 무려 1만1423회로, 전체 상영 횟수(1만5675회)의 73%에 육박한다.
사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영화계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지난해에도 씨제이이앤엠(CJ E&M)이 배급한 <군함도>가 개봉 첫날 스크린 2027개(상영 횟수는 1만182회·상영 횟수 점유율 55.2%)를 확보하면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불을 붙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인피니티 워>에서 볼 수 있듯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극장 체인을 소유한 대기업이 배급하는 한국영화보다 오히려 외국영화에서 더 심각하다. <한겨레>가 영진위 통합전산망 등을 통해 집계해보니, 역대 최다 스크린 배정 영화 상위 20편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편이 외화인 것으로 나타났다. 1위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비롯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3위), <스파이더맨: 홈커밍>(4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7위),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10위), <배트맨 vs 슈퍼맨>(11위), <킹스맨: 골든 서클>(12위), <토르: 라그나로크>(13위) 등이 이름을 올렸다. 배급사별로 따져보면, 이 가운데 디즈니의 작품이 7편에 달했다.
역대 최대 스크린 수를 확보해 개봉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크린 독과점 논쟁을 재점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멀티플렉스 쪽은 관객의 선택을 존중한 ‘시장논리’에 따른 스크린 배정이라는 입장이다. 씨지브이 홍보팀 관계자는 “<인피니티 워>는 예매율이 97%에 이르고, 개봉 전부터 예매관객이 100만을 돌파했다. 극장 입장에서는 관객 선호도에 따라 스크린과 상영 횟수를 편성할 수밖에 없다”며 “여타 배급사들 역시 <인피니티 워>를 피하기 위해 큰 영화를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 인위적으로 편성을 조정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피니티 워>와 같은 날 개봉한 작품은 <당갈>, <살인소설>, <클레어의 카메라>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이런 독과점 양상은 결국 문화의 다양성은 물론 산업적 토양까지 훼손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반독과점영화인대책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정윤철 감독은 “영화라는 산업의 한 축인 유통업자(극장)가 농부(중소규모 제작·배급사)를 죽이는 행위를 하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작은 영화는 다 사라지고 일년 내내 마블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만 봐야 한다. 문화적 다양성의 당위성을 떠나 산업 자체도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제도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한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군함도> 논란 이후 문화체육관광부가 영비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며, 영화계에서도 지난해 말 반독과점영화인대책위가 출범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국회의원이던 2016년 대표 발의한 영비법 개정안과 지난해 조승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영비법 개정안 등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일부에서는 영화 배급과 상영을 동시에 하는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인피니티 워> 문제에서 볼 수 있듯, 스크린 독과점은 외화에서 더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또 <군함도> 사례에서 볼 수 있듯 2000개가 넘는 스크린은 계열사인 씨지브이뿐 아니라 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가 ‘수익 극대화’라는 시장논리에 따라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영·배급의 분리보다는 특정 영화에 할애하는 스크린 수를 제한하는 ‘스크린 상한제’의 도입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는 “프랑스는 영화 한 편이 전체 스크린의 30%를 넘지 못하게 하는 스크린 상한제가 법제화돼 있다. 상한선은 한국 상황에 맞게 조정하더라도 스크린 상한제가 필요하다”며 “또 단순히 스크린 수뿐 아니라 상영 횟수, 상영 시간대, 좌석 수 등을 고려해 프라임 시간대에도 다양한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조승래 의원 역시 “그동안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동반성장 이행협약’ 등 산업계의 자발에 맡겨왔지만, 오히려 독과점이 심해져 이제는 법적·제도적 규제가 필요하다”며 “대기업이 직영하는 상영관에서는 동일한 영화를 일정 비율(40%) 이상 상영하지 못하도록 상영 횟수를 대통령령으로 제한하는 반독과점 조항이 영비법 개정안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