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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흩어진 재일동포 가족, 그래도 희망은 놓을 수 없다

등록 2018-05-03 17:22수정 2018-05-03 21:06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야키니쿠 드래곤’
재일동포 3세 시나리오 작가 정의신 연출작
고통 속에서도 희망 잃지 않는 동포 가족 그려
”여러차례 연극으로 올린 작품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 봤으면 해 영화화”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야키니쿠 드래곤>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야키니쿠 드래곤>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표현의 해방구’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가 3일 개막해 열흘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전 세계 46개국 240편(장편 196편·단편 44편)이 관객을 맞는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은 개막작인 <야키니쿠 드래곤>. 일본의 대표적인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재일동포 3세 정의신이 자신의 동명 연극(2008)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정 감독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재일 한국인들의 힘겨운 삶과 애환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주에서는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하는 등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일본의 고도성장기인 1969년 간사이 지방의 변두리 조선인 빈민촌에서 ‘용길이네 곱창구이’(야키니쿠 드래곤)를 꾸려 나가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 가족의 삶을 다룬다.

주인공 용길은 태평양 전쟁에서 왼쪽 팔을 잃고, 한국전쟁에서는 아내를 잃었다.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려 했지만, ‘4·3사건’으로 부모·형제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까지 몰살당하며 고향도 잃었다. 이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전처 사이에서 낳은 두 딸과 아내가 데려온 셋째딸, 아내와 사이에서 낳은 막내아들 등 4남매를 키우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나 사고로 다리를 저는 큰딸, 결혼한 지 1년 만에 이혼의 위기에 처한 둘째 딸, 일본인 유부남과 눈이 맞은 셋째 딸, 그리고 일본학교에서 집단괴롭힘(이지메)을 당해 괴로워하는 아들까지 용길의 가족 중 누구도 평범하게 살지 못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인에게 산 식당마저 국유지 불법 점거라는 이유로 강제 철거를 당할 위기에 몰리며 가족의 터전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야키니쿠 드래곤>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야키니쿠 드래곤>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는 결함투성이인 데다 그 탓에 상처에 휘청이는 가족을 따뜻하고 유머 넘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재일은 모순덩어리”, “한 손엔 돈, 한 손엔 눈물” 등 경계인일 수밖에 없는 재일동포 신분의 고단함을 표현하는 대사도 많다. 개막작 시사 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정 감독은 “일본에는 재일동포라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제가 그렇게 태어나고 자란 한 명이라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런 소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잊힐 이야기다. 연극으로 이미 여러 차례 공연한 작품을 영화로 만든 이유 역시 더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고 밝혔다.

“작은 세트에서 촬영을 해 연극무대를 보는 것 같이 가족의 교류를 가깝게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극 그대로를 스크린에 옮긴 듯 동선이 적은 연기와 연극적 대사는 다소 아쉽다. 하지만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를 살린다. 특히 용길 역을 맡은 배우 김상호의 섬세한 연기가 빛난다. 유부남의 아이를 가진 셋째딸에게 “내 몫까지 행복하게 살라”고 결혼을 허락하며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맞선 자신의 신신한 삶에 대해 담담히 털어놓는 10여분의 ‘원 테이크’ 장면은 압권이다. 김상호는 “다른 (일본어) 대사는 짧아서 순발력과 기억력으로 해결했지만, 이 한 장면만은 7시간 동안 촬영했다. ‘오케이’ 소리에 혼자 환호했다. 정말 마음을 졸였던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집단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막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강제 철거로 삶의 터전이 허물어지자 아버지 용길이 “억지로 전쟁에 끌고 갔지 않냐, 땅을 빼앗으려면 이 팔을 돌려줘, 이 팔을 돌려줘. 그리고 내 아들 돌려줘”라고 울부짖으며 정점으로 치닫는다. 그의 눈물을 뒤로하고 터지는 만국박람회 불꽃놀이는 옹이진 재일동포의 현실을 더욱 서글프게 비춘다.

결국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지만 영화는 끝까지 희망을 이야기한다. 판잣집 지붕 위로 눈처럼 벚꽃이 날리는 가운데 용길이 말한다. “참 기분 좋다. 이런 날은 내일을 믿을 수 있지. 어제가 어떤 날이었든, 내일은 꼭 좋은 날이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라고.

전주/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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