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동갑내기로 봄내필름을 만들어 감독-프로듀서를 오가며 세 편의 영화를 만든 김대환(왼쪽), 장우진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두 중학생이 동네 비디오방에서 만났다. 눈이 펑펑 내리던 중3 졸업식 날이었다. “너도 영화 좋아하니?”, “응. 넌 무슨 영화 빌렸어? 다 보고 나서 바꿔 볼래?” 같은 미술학원에 다니면서도 데면데면했던 사춘기 소년 두 명은 그날 이후 ‘단짝’이 됐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영화를 더 좋아했던 둘은 같은 대학과 같은 대학원을 거쳐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본격적으로 영화의 길’을 걷고 싶었던 둘은 의기투합해 영화사 ‘봄내 필름’을 만들고 감독과 프로듀서를 오가며 서로의 영화를 도왔다. 봄내 필름의 첫 번째 작품 <춘천, 춘천>(2016)은 부산국제영화제 비전감독상을 받은 뒤 베를린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등에 잇따라 초청됐고, 두 번째 작품 <초행>(2017)은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프로젝트’(JCP)에 선정된 데 이어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최초로 신인감독상을 거머쥐었다.
‘18년 지기 짝꿍’ 장우진·김대환(33) 감독 이야기다. 뭔가 시나리오 속 두 주인공 같은 둘을 지난 4일 전주에서 만났다. 봄내 필름의 세 번째 영화 <겨울밤에>가 올해 또다시 장편영화 제작지원사업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에 선정돼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터다. 지난해 <초행>과는 역할을 바꿔 이번엔 장우진이 감독을, 김대환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세 번째 영화까지 승승장구하다니 대단하다는 인사말을 건넸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세 편이 모두 주목을 받다 보니 저희를 특별하다고 보는 분들이 계시는데, 사실 그 전까지는 모든 공모전과 제작지원에서 다 떨어졌어요. 하하하. 학교 졸업한 뒤 영화가 잘 안 될 때, 우진이와 영화사 차린 것이 ‘신의 한 수’였나봐요.”(김대환) “영화사 차린 것도 대단한 건 아니었어요. 시나리오 쓴답시고 나태해지는 걸 서로 막아주며 채찍질하자는 의미였어요. 이번엔 내가 제작할 테니, 너 빨리 시나리오 써. 이런 식으로 단도리를 친달까?”(장우진)
봄내 필름에서 만든 세 편의 영화는 모두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다. <춘천, 춘천>과 <겨울밤에>는 춘천, <초행>은 삼척이 주 무대다. 봄내라는 말도 ‘춘천’의 순우리말이다. “둘 다 춘천 애막골 출신이니 내가 발 딛고 선 공간과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 듯해요. 얽힌 추억이 많으니까. 아직 꺼낼 이야기가 무궁무진하죠. 또 서울 배경 영화는 많지만 강원도는 블루오션 같기도 하고.” 장우진의 말을 김대환이 웃음으로 받으며 보탠다. “<초행>의 배경인 삼척엔 외가가 있어요. 가족이 다 강원도에 있어 그런가? 도 차원에서 관심도 많이 주시는데, 사실 고향을 홍보하려던 건 아녜요. 하하하.”
이번 영화 <겨울밤에>는 중년 부부 은주와 흥주가 결혼한 지 30년 만에 춘천 청평사를 방문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은주가 핸드폰을 잃어버려 둘은 청평사로 되돌아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발견한 식당(민박집)은 두 사람이 처음 하룻밤을 보냈던 곳이다. 영화는 중년 부부의 상황을 현실과 환상을 여러 갈래로 직조해 풀어낸다. 어디서부터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상상인지 알 수 없는 독특한 ‘인 앤 아웃’ 구조지만, 그 안에서 담담하고 차분하게 중년의 감정을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구조 자체가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점일 수도 있어요. 30년 만에 같은 장소에 가면 자연스레 연인으로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르겠죠. 허나 추억이라는 것이 연대기적으로 생각나지는 않을 거예요. 시간은 뒤섞이고 헛갈리기 마련이니까요. <춘천, 춘천>이 데깔꼬마니 구조라면, <겨울밤에>는 입체파 그림에 가깝죠. 논리가 아닌 영화적 이미지로 체험하길 바라요.”(장우진) 일반 관객에겐 다소 어렵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자 김대환이 방어를 한다. “관객이 잘 이해할까라는 고민은 제치고 무엇을 어디까지 말할까만 생각해요. 그다음은 관객의 몫이죠. 전주영화제는 실험적인 작품에 기회를 줘요. 우리끼리 ‘전주가 낳은 아이들’이라는 우스개소릴 하곤 하죠.”
서른셋 동갑내기로 봄내필름을 만들어 감독-프로듀서를 오가며 세 편의 영화를 만든 김대환(왼쪽), 장우진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초행>이 그랬듯, <겨울밤에>도 즉흥연기의 힘이 많이 작용했다. 롱테이크 신도 유난히 많다. “배우도 한 명의 창작자라 생각해 협업할 때 즉흥성을 중시해요. ‘대사의 맥락이 시나리오와 다르지만 않다면, 마음대로 보여주세요’라고 하죠. 대신 작업 들어가기 전 한 달 동안 이야기를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장문의 이메일도 주고받고요. 영화가 여성 캐릭터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도, 지금과 같은 엔딩을 택한 것도 배우에게 받은 영감 덕이죠.”(장우진)
동갑내기 ‘죽마고우’가 함께 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내 편이 하나 있다는 것? 영원한 우군이죠. 어떤 순간이든 연출의 입장에서 봐주니까요.”(장우진), “재미요. 밤새 술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술 안 먹고도 이야기하고. 그 안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우린 영화가 정말 재밌어서 하거든요.”(김대환) 편하다 보니 싸우거나 질투를 하거나, 그런 단점은 없을까? “한 번도 안 싸웠어요. 서로 일방적인 ‘지랄’은 하죠. ‘술 좀 그만 처 먹어’ 같은? 하하하.”(김대환) “어떤 영화든 공동의 작품이니 질투는 없죠. 굳이 꼽자면, 가난하다는 거? 근데, 우린 마음이 부자니까요.”(장우진)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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