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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불편한 성폭력장면…페미니즘 영화의 외침, 직시하라

등록 2018-05-08 17:41수정 2018-05-08 20:18

-전주영화제에 온 이사벨라 에클로프 감독-
페미니즘 영화 ‘홀리데이’로
‘관객과의 대화’ 뜨겁게 달궈
“눈물 클로즈업은 감정포르노”
여성주의 영화 <홀리데이>를 들고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이사벨라 에클로프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여성주의 영화 <홀리데이>를 들고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이사벨라 에클로프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프론트라인’ 섹션에서는 덴마크에서 온 여성감독의 영화 한 편이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한 것은 물론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예정된 시간을 넘기는 뜨거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여성을 대담하고 논쟁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페미니즘 영화 <홀리데이>의 이사벨라 에클로프 감독(40)을 6일 전주에서 만났다.

영화는 여성 무용수의 격렬한 댄스 장면이 삽입된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사벨라 감독은 “셰익스피어의 연극에서 사용되던 팬터마임을 참고했다. 우리가 맞닥뜨릴 새로운 상황과 정서를 ‘미리보기’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하는 여성 주인공의 억눌린 감성을 댄스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홀리데이>는 젊고 아름다운 주인공 샤샤가 갱단 두목인 애인 마이클과 함께 터키의 한 항구도시에서 휴가를 보내며 시작된다. 사치스런 요트, 술과 음식, 마약과 섹스…. 그러나 갱들의 폭력적 성향과 방종에 질린 샤샤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만난 네덜란드 여행자 토마스와 시시덕거린다. 이를 알게 된 마이클은 충격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샤샤를 처벌한다. 화려한 휴양지의 이미지는 모두 공허한 것임이 드러나고, 샤샤는 남성들의 공동체를 감싸고 있던 질서와 규율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샤샤가 마이클에게 당하는 성폭력 장면을 불편할 만큼 적나라하게 그린다. 갱단의 폭력이 창고 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로만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것과 대비된다. “기본적으로 영화의 화자는 샤샤다. 갱단의 폭력은 샤샤의 눈 밖에서 벌어지지만 성폭력은 샤샤가 직접 당하는 일이기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그려야 했다. 솔직해지자. 관객은 성폭력 자체보다 ‘발기된 남성 성기’를 더 불편해한다. 하지만 그게 이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겪는 일이라면 스크린에서도 묘사가 허용돼야 한다.” 이사벨라 감독은 논쟁적 장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과하다는 의견도 존중한다. 영화 시작 전, 불편하면 언제든 나가도 좋다고 안내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주의 영화 <홀리데이>를 들고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이사벨라 에클로프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여성주의 영화 <홀리데이>를 들고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이사벨라 에클로프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마이클의 물리적·성적 폭력에도 참고 순종하던 샤샤는 토마스의 ‘언어폭력’에 별안간 폭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장면은 영화의 리듬감과 호흡에 균열을 내고 관객의 섣부른 예단을 배반한다. “샤샤에게 토마스는 갱들의 사회에서 보통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 같은 존재였다. 보통 사람의 세계가 자신을 거부했다는 생각에 폭발했을 수 있다. 한편으론 마이클은 폭력을 가하면서도 샤샤를 판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토마스는 ‘더럽다’는 식의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샤샤는 마이클의 ‘육체 학대’보다 토마스의 ‘영혼 학대’에 더 분노하지 않았을까?” 인터뷰 내내 자신의 영화에 ‘거리감’을 유지한 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는 감독의 태도가 신선했다.

지난해와 올해 한국 영화계를 휩쓴 두 가지 풍경에 대해서도 물었다. 지난해엔 <브이아이피> 등으로 촉발된 ‘여혐 논란’으로, 올해는 김기덕 감독 등 힘을 가진 남성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으로 영화계가 끓어올랐다. 유럽에서 온 이사벨라 감독은 여성을 그리는 방식, 미투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성폭력 당하는 여성을 클로즈업해 우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감정적 포르노’라고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하지 않는다. 여성을 슈퍼히어로처럼 그리는 것도 싫어한다. 여성은 강하지만 연약하고 선과 악이 공존한다. 남성과 다르지 않다. 미투는 훌륭한 현상이다. 여성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이 사회적·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통쾌하다. 그만큼 학대받는 여성, 그리고 그들이 내는 용기에 대한 조명이 사회적으로 영화적으로 더 많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전주/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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