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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원 신·원 커트, 절대 편집없음, 촬영 뒤엔 다 함께 한잔!”

등록 2018-05-13 13:10수정 2018-05-13 20:30

‘원피스 프로젝트:무비 브레인’ 스즈키 다쿠지 감독

장면전환 없는 10분 남짓 에피소드
재미로 시작해 28년간 63편

고정카메라에 계산된 동선·앵글
관객한테 화면 밖 상상하게 유도
소소하지만 때로 박장대소·울컥
<원피스 프로젝트>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일본의 스즈키 타쿠지 감독. 이즈미 지하루 제공
<원피스 프로젝트>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일본의 스즈키 타쿠지 감독. 이즈미 지하루 제공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원 신(one scene), 원 커트(one cut)로 촬영한다, 절대 편집하거나 추가 사운드 작업을 하지 않는다. 촬영을 마치면 그날 밤 반드시 다 같이 모여 술을 마신다.(웃음)”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원피스 프로젝트: 무비 브레인>를 연출한 스즈키 타쿠지 감독이 24년째 지켜온 대원칙이다. 지난 6일 전주에서 마주한 스즈키 감독은 이 프로젝트의 시작에 관해 묻자 긴 회상에 잠겼다. 시작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즈키 감독은 대학 후배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며 영화 동료인 야구치 시노부 감독과 지방의 한 워크숍에서 원 신, 원 커트 작업을 함께해 본 뒤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야구치 감독과 영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렇게 쏟아지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 그 워크숍에서 해 본 원피스 프로젝트가 가장 유효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저도 직접 영화에 출연하게 됐고요.(웃음)”

<원피스 프로젝트>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일본의 스즈키 타쿠지 감독. 이즈미 지하루 제공
<원피스 프로젝트>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일본의 스즈키 타쿠지 감독. 이즈미 지하루 제공
처음부터 큰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이십 대 중반이던 우리는 큰 그림이나 계획을 세우진 않았습니다. 한 가지 아이디어에서 파생한 다양한 생각을 엮고 차곡차곡 축적해 가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의 의도였습니다.” 그렇게 재미로 시작한 작업은 28년 동안 63편이 됐고, 스즈키 감독은 이를 모아 디브이디(DVD) 전집도 내고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영도 했다.

올해 전주에서 상영된 <원피스 프로젝트>는 10분 남짓의 작품 13개로 구성됐다. 간단해 보이는 에피소드들의 묶음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한 여자가 카메라 앞에서 의자에 앉은 남자친구의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여자는 갑자기 자리를 뜨고, 다른 여자가 남자의 머리를 대신 자른다. 하지만 남자는 자기 뒤에 선 여자가 바뀐 것을 모르고 머리 위로 반지를 꺼내 들어 프러포즈를 한다. 엉뚱한 상황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진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백 기간에도 영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말자, 종이와 펜만 있으면 글을 쓸 수 있듯이 카메라만 있다면 영화를 만들어 보자.”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해 24년 동안 지속한 원피스 프로젝트는 소소해 보이지만 때로는 관객을 박장대소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 한구석을 울컥하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에겐 ‘나도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 볼까?’하는 욕구와 왠지 모를 자신감을 마구 샘솟게 한다.

하지만 스즈키 감독은 원피스 프로젝트가 보는 것과 달리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를 간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확실한 계획을 갖지 않으면 매우 어려운 작업이니까요. 그저 카메라를 세워놓고 촬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의 세밀한 동선과 전체적인 앵글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만들어야 해요.”

영화 <원피스 프로젝트: 무비 브레인>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원피스 프로젝트: 무비 브레인>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촬영하는 내내 감독은 카메라와 대결을 벌인다고 했다. “촬영하다가 ‘재미없으면 어떡하지?’라며 카메라를 움직이게 되면 ‘영화에게 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재미, 진짜 긴장감이라는 것은 일정 정도 지속되는 시간 안에서 만들어지니까요. 고정된 카메라 탓에 보이지 않는 화면 밖의 일까지도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할 수 있어요. 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영상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가능하고 생각합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영화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영화 뇌’를 가졌다는 스즈키 감독. 최근 교토에서 전차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촬영을 마쳤다. 이제 사라져 가는 전차를 매개로 가슴 따스한 사람들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란다.

현재 교토 조형예술대학 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한 그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를 본 젊은 관객들에게 감사도 전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찾아온 많은 젊은이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또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하고 기탄없이 질문을 던지는 모습에 감동했고요. 제 프로젝트가 영화의 한계에 도전하는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자극이 되길 바랍니다.”

전주/정지욱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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