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5·18 광주민주화운동’ 38주년을 앞두고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 두 편이 잇따라 스크린에 걸린다. 외신 기자의 눈으로 당시를 촘촘하게 직조한 다큐멘터리 <5·18 힌츠페터 스토리>(17일 개봉)와 허구를 가미해 광주를 현재의 관점에서 그려낸 극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16일 개봉)이 하루 차이로 관객과 만난다. 두 영화 모두 왜 광주의 그날이 ‘살아 있는 역사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인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일깨운다는 점에서 비교해서 보면 좋겠다.
■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 힌츠페터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지난해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택시운전사> 속 실존 인물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이야기다. <택시운전사>는 힌츠페터가 택시기사 김사복의 도움을 받아 광주를 빠져나오고 이 사건을 전 세계에 무사히 알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번 다큐는 <택시운전사>, 그 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힌츠페터는 독일 방송에 자신이 촬영한 광주의 영상을 보낸 뒤 두 번이나 더 광주로 향한다. 그는 계엄군의 무차별 발포로 희생된 시민의 주검이 즐비한 병원 모습, 전남도청으로 속속 집결하는 시민군의 모습 등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기록했다. 그가 세 번에 걸쳐 기록한 광주의 참상은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다큐로 제작돼 독일에서 방영됐고, 이 영상은 독일에서 유학하던 가톨릭 신부를 통해 한국으로 반입됐다. 그리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소규모 공동체 방식으로 상영돼 당시 언론이 침묵한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중요한 자료로 쓰였다.
이 영화는 힌츠페터가 당시 촬영한 영상에 <케이비에스(KBS) 스페셜> ‘푸른 눈의 목격자’(2003)를 제작하며 힌츠페터를 취재한 장영주 한국방송 피디의 취재 내용이 덧입혀져 만들어졌다. 장 피디와 힌츠페터는 ‘푸른 눈의 목격자’를 계기로 처음 만난 뒤 서로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관계를 이어갔다. 2016년 1월, 힌츠페터의 부고를 처음 한국에 알린 것도 장 피디였다.
<5·18 힌츠페터 스토리>의 한 장면.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에는 힌츠페터가 1986년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광화문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 폭행을 당하는 장면, 광주 취재로 인해 그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는 부인의 증언, 김사복 아들의 인터뷰 등 처음 공개되는 내용도 많이 담겼다. 죽음의 공포와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언론인의 사명을 다한 힌츠페터가 전한 ‘광주의 진실’이 먹먹한 울림을 전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한 장면. 알앤오엔터테인먼트 제공
■ 아직 끝나지 않은 그날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18년과 1980년을 오가며 광주의 비극을 현재의 관점에서 되짚는 영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989년 발생한 조선대생 이철규 변사 사건을 절묘하게 엮어 끝나지 않은 역사의 상흔을 그려낸다.
1980년 5월에 시간이 멈춰 있는 엄마 명희(김부선)와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는 딸 희수(김꽃비)가 ‘그날의 참상’에 대한 기억을 마주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이 영화의 뼈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한 장면. 알앤오엔터테인먼트 제공
1980년 5월. 형사를 피해 미대 실습실에 숨은 운동권 법대생 철수(전수현)는 미대생 명희(김채희)와 마주친다. “데모하면 휴강을 하기 때문에 (데모에) 찬성한다”고 할 정도로 사회에 무관심하던 명희는 자신을 희생하며 ‘신념’을 지키려 하는 철수에 대한 호기심으로 운동권 동아리에 가입한다. 2018년 5월. 머리에 총알이 박혀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는 명희의 증세는 나날이 심각해진다. 그런 엄마를 원망하던 희수는 엄마가 겪은 과거의 진실을 하나씩 찾아나가며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한 장면. 알앤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대표곡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공식행사에서 ‘금지곡’처럼 취급됐다. 이 영화 역시 제목의 상징성 때문에 제작 중단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 서 있다”는 대통령의 선언과 함께 이 노래는 다시 역사의 중심으로 소환됐다. 그다지 새롭지 않은 스토리텔링 방식인데다 이야기를 직조하는 솜씨도 매끄럽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왜 같은 타령을 반복하느냐”는 사회 일부의 차가운 물음에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그날의 상처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역사에 빚을 진 우리는 그날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