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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칸 이후? 행복따라 갈래요” vs “내 얼굴로 블루오션 개척”

등록 2018-05-31 05:00수정 2018-05-31 09:27

-충무로가 주목한 두 샛별-
전종서
오디션 한방에 ‘이창동 뮤즈’
모든 게 갑작스러워 어리둥절

내 맘대로 춘 ‘노을 속 춤사위’
감독님 믿어줘서 즐겁게 촬영

휘둘리지 않는 법 배우고
‘여성 목소리’ 담은 영화하고파

이주영
‘연기하지 않는 자연스런 연기’
대사 한마디 없이 ‘신스틸러’로

20대 때는 주목 못받던 모델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법 배워

재밌게 연기하며 밥 벌어먹고 사는,
‘월급쟁이만큼 버는 배우’가 목표

그 누구보다 화려한 발걸음을 뗀 두 명의 신인 여배우가 있다. 세계적 거장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의 여주인공 역을 꿰찼고,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레드카펫을 밟은 전종서(24). 2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개봉작 <독전>에서 조연임에도 존재감을 뽐내는 이주영(31). 두 사람을 최근 잇따라 만났다.

<버닝>의 여주인공 배우 전종서. 씨지브이 아트하우스 제공
<버닝>의 여주인공 배우 전종서. 씨지브이 아트하우스 제공
이창동의 뮤즈 전종서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전종서는 “너무 갑작스러워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럽다”며 웃음조차 얼어버린 듯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칸으로 출국하는 공항에서부터 일거수일투족은 플래시 세례를 받았으며, 돌아오자마자 줄줄이 언론과의 인터뷰가 잡혔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모든 타이틀이 너무 무거워요. 촬영 당시엔 칸에 가는 줄도 몰랐고, 경쟁, 비경쟁 개념조차 없었어요.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그저 스케줄을 잘 소화해야 한다는 강박만 있을 뿐 ‘꿈에 그리던 무대’라는 감흥 같은 게 없었죠.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제게 쏟아지는 관심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고요. 연기는 배우면 되지만, 배우가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불편하고 어렵다는 그 말이 솔직한 대답일 게다. 소속사에 들어간 지 3일 만에 숙제처럼 참여한 첫 오디션에서 덜컥 캐스팅이 됐다. 그 후 일주일 만에 크랭크인을 했다. 그 무엇도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이창동 감독님 작품인 줄도 모르고 오디션을 봤거든요. 축하하고 기뻐하고 불안해하고 이럴 새도 전혀 없이 촬영 스케줄 따라가느라 제 감정은 정말 뒷전이었어요. 물론 그 혼란이 즐겁기도 했지만.”

<버닝>의 여주인공 배우 전종서. 씨지브이 아트하우스 제공
<버닝>의 여주인공 배우 전종서. 씨지브이 아트하우스 제공
어쩌면 ‘무지했기’ 때문에 더 잘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기 경험이 거의 없던 전종서다.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긴 했기에 “응당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대학도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학교는 열심히 다니지 않았다. ‘연기’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을 희미하게 느끼는 그에게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지 불분명한 공간일 뿐이었다. “연기는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고, 연기는 그냥 네가 너 자신을 알아가는 거라고 학원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버닝>을 찍을 때 감독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네가 더 잘 알지 않겠니? 네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풀어가 보자’라고요.” 이창동 감독은 전종서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그냥 해미가 거기 있었다”고 했다. 길들지 않은 연기, 거칠지만 꾸밈이 없는 모습에서 감독은 ‘해미의 자유로움’을 엿봤는지도 모른다.

<버닝>에서 전종서는 결코 쉽지 않은 베드신과 노출신을 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연기’는 첫 장면, 첫 촬영이었다고 했다. “나레이터 모델인 해미가 춤을 추는 장면이었는데, 현장의 프로세스를 전혀 몰라 힘들었어요. 언제 밥 먹고, 언제 쉬고, 언제 액팅이 들어가는지….” 그런 전종서에게 이창동은 감독이기 이전에 ‘큰 어른’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촬영이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감독님 덕이었어요. 아버지 같고, 선생님 같고, 큰 사람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있는 그대로 믿고 이해해주시는 분이셨죠.”

<버닝>의 여주인공 배우 전종서. 씨지브이 아트하우스 제공
<버닝>의 여주인공 배우 전종서. 씨지브이 아트하우스 제공
초승달이 고개를 빼꼼히 내민 가운데 뉘엿뉘엿 노을이 지고 해미가 상의를 탈의한 채 춤을 추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어떤 감정으로 연기 했을까? “감독님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어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으니까요. 손으로 새를 표현했어요. 새는 자유를 상징하잖아요? 노을은 활활 타오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죠. 우리 삶도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행복과 슬픔이 공존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고 싶지만 자유로울 수 없는…. ‘그레이트 헝거’의 춤처럼 그럼에도 우린 계속해서 희망을 갈망하며 살잖아요.” 전종서는 장 자끄 베넥스 감독의 <베티블루 37.2>(1986) 속 거침없이 솔직하고 매력적인 ‘베아트리스 달’을 떠오르게 했다.

앞으로 전종서에겐 ‘이창동의 뮤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을 터다. 왕관의 영예를 즐기는 것도, 그 무게를 견디는 것도 그의 몫이다. “제가 정말 ‘이창동의 뮤즈’인지는 감독님께 물어야겠죠. 다만, 보호받고 예쁨받으며 첫 단추를 끼웠는데, 다음번엔 이러지 못 할까 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건 사실이에요.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이 많지만, 결국 선택의 기준은 ‘행복’ 아닐까요? 커피 메뉴를 고를 때도 좋아하는 게 뭔지가 중요한데, 하물며 직업인 연기는 더더욱.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겠죠.”

전종서는 앞으로 ‘여성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당당한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소망과 자유를 담은 영화요. 많은 선배님이 말씀하듯 여성 영화가 많지 않아요. <버닝>에도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대사가 나오잖아요. 여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표하는 영화, 지금 시대에 필요할 것 같아요.”

드라마 <라이브>와 영화 <독전>에서 열연한 배우 이주영이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드라마 <라이브>와 영화 <독전>에서 열연한 배우 이주영이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말 한마디 없어도 독한 존재감, 이주영

<독전>은 ‘독한’영화다. 중국 마약왕 고 김주혁(진하림)도, 우두머리를 꿈꾸는 차승원(브라이언)도, 행동대장 박해준(선창)도, 스폰서 김성령(오연옥)도, 그리고 형사 조진웅(원호)도 모두 경쟁하듯 독한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그 틈새에서 마약제조자 ‘농아 남매’ 여동생 역으로 이주영은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라이브>(tvN)에서 시청자의 눈도장을 받은 그는 <독전>으로 상업영화 신고식을 거하게 치러냈다. 최근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에서 만난 이주영은 “예쁘지 않고 심심한 외모 덕을 톡톡히 보는 듯하다”며 웃었다.

드라마 <라이브>와 영화 <독전>에서 열연한 배우 이주영이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드라마 <라이브>와 영화 <독전>에서 열연한 배우 이주영이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75㎝의 긴 기럭지 소유자 이주영은 다리를 접어 넣는 시늉으로 하며 의자에 앉았다. “<라이브> 때도 커트 머리였는데, <독전> 하면서 더 짧게 잘랐어요. 촌스럽게 보이려고 태닝도 하고, 살도 한 3㎏ 정도 더 뺐죠. 여기에 남자 같은 옷까지 입으니 여자 같은 면이 전혀 없죠?” 그게 매력이라니 특유의 기분 좋은 웃음이 쏟아진다.

<독전> 속 이주영은 대사가 한 마디도 없다. 모든 대화는 ‘수화’로, 그리고 그것을 통역하는 통역사의 말로 전달된다. “3~4개월 정도 수화센터에서 수화를 배웠어요. 제가 말투가 조곤조곤하고 과장이 없는 편이라 수화 배우는 데 힘들었어요. 농인들은 자기표현을 위해 온몸으로 말을 하거든요. 감독님은 그냥 ‘믿는다’며 신경도 안 쓰시더라고요. 푸하하.”

<독전>의 원작인 홍콩영화 <마약전쟁>에는 ‘농아 형제’였던 배역이 ‘농아 남매’로 바뀐 것은 배우 이주영에 대한 이해영 감독의 ‘애정’ 때문이었다. “감독님이 제가 출연한 단편 <몸값>을 보시고 한 번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무작정 <독전> 오디션을 봤는데, 너한테 딱 맞은 배역이 없다고 고민하시더니 농아 형제를 남매로 바꾸셨어요. 정말 영광이었죠.” 이해영 감독과 제작사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는 이주영에 대해 “연기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주영은 원래 모델 출신이다. 단편영화 <몸값>(감독 이충현)을 찍으며 ‘대단한 단편영화제’와 ‘아시아나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으며 독립영화계에 데뷔했다. ‘15분짜리 원 신, 원 커트’인 이 영화가 이주영의 인생을 바꾼 셈이다. “학창시절부터 앞에 나서고픈 마음은 있는데, 끼도 없고 예쁘지도 않아 나서지 못하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모델로는 성공 못 했나 봐요. 푸하하.”

모델생활의 실패는 상처였지만, 그걸 딛고 일어선 것은 삶의 에너지가 됐다. “드라마 <라이브>의 경찰서 시보(인턴) 송혜리 역은 그 시절의 저와 많이 닮았어요. 욕심은 많은데, 자꾸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이죠. 하지만 성장도 하니까요. 제게 20대의 10년은 쓰라린 좌절이자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법을 배운 시기였어요.”

이주영은 <독전>과의 만남을 ‘로또보다 더한 행운’이라고 했다. “배우는 외모도, 키도, 아닌 다른 무언가로 승부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우습지만, <독전>에서 시끄러운 음악 틀고 약에 취해 막춤을 추는 장면을 찍으며 자신감을 얻었어요. ‘못 추면 어때? 내 맘대로 막 추면 돼!’ 이런 너그러운 생각? 푸하하. 안 예쁜 저 만의 블루오션을 개척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는 한 달에 200만~300만원씩 꾸준히 버는 배우가 되는 게 당장의 목표라고 했다. “예전엔 100만원이었는데, <라이브>랑 <독전> 찍으며 조금 올랐어요. 푸하하. 우리 세대 월급쟁이만큼만 벌면 이렇게 재밌는 연기로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잖아요. 물론 자신감은 넘치지만 자만심은 없는 좋은 배우가 되는 게 꿈인 건 두말하면 잔소리겠죠.”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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