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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촌스럽다고? 재밌으면 되지! B급 세대에 A급 호응

등록 2018-06-18 04:59수정 2018-06-18 09:14

B급 콘텐츠 거센 바람

SNS·유튜브 이용 2030세대
자극적·직설적 콘텐츠 매료
영화 ‘데드풀2’ ‘튼튼이의 모험’
공연 ‘이블데드’ ‘록키호러쇼’
배달앱·금융업계·공공기관까지
소비자·생산자 모두 B급에 익숙
조악해서 싼 티가 나는 데다 너무 직설적이어서 때로는 촌티마저 줄줄 흐른다. 하지만 빵 터지는 재미가 있다. 영화 대사(<바람 바람 바람>)처럼 “뭔가 더러운데 신선하다”고나 할까?

최근 영화·방송·공연·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B)급 콘텐츠’가 넘쳐나고 있다. 한 때 ‘하위문화’, ‘비주류 문화’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비급 문화’가 이제 대중문화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일탈적 재미에 머물던 ‘비급’이 대한민국 문화의 토양을 바꿔놓고 있는 셈이다. 고급스럽고 세련되며 값비싼 예술을 야유하며 ‘저급하면 좀 어떠냐’고 부르짖는 ‘비(B)급 문화’에 쏟아지는 ‘에이(A)급 호응’은 대체 왜일까?

할리우드 히어로물 ‘데드풀2’
할리우드 히어로물 ‘데드풀2’
■ 주류 대중문화를 집어삼킨 비급 영화·공연·방송

지난달 개봉한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 <데드풀2>는 377만여명을 동원하며 1편(330여만명)의 성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다. ‘대의를 고뇌하는 영웅’의 모습에서 백만 광년은 떨어져 보이는, 유혈낭자에 욕설이 난무하는 이 괴짜 히어로는 ‘19금 병맛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국 관객을 매료시켰다.

영화 ‘바람 바람 바람’
영화 ‘바람 바람 바람’
한국 영화계에도 이런 흐름은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가리지 않고 확산하고 있다. 지난 4월 개봉한 <바람 바람 바람> 역시 ‘어른들을 위한 비급 코미디’다. ‘불륜’이라는 다소 논쟁적인 소재를 차진 말맛과 상황을 비트는 적절한 코미디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튼튼이의 모험’
영화 ‘튼튼이의 모험’
오는 21일 개봉하는 <튼튼이의 모험>도 ‘병맛 코미디’를 강조한다. 존폐위기를 맞은 고교 레슬링부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질한 청춘들의 현실을 풀어낸다. 고봉수 감독은 “30대 배우가 18살 고교생을 연기한 것 자체가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에 허를 찌르는 발랄한 감각과 엇박자 호흡도 관객의 배꼽을 뺀다”고 말했다.

공연계에도 비급 바람은 거세다. 지난 12일 개막한 뮤지컬 <이블데드>는 샘 레이미 감독의 동명 비급 영화를 각색한 작품으로, 숲 속 오두막으로 여행을 떠난 대학생들이 좀비와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손나은 연출은 “넘쳐나는 패러디와 엉뚱한 시추에이션 코미디가 일품인 작품”이라며 “특히 ‘스플레터석’이라는 객석을 마련해, 여기에 앉은 관객에게 피를 뒤집어쓰는 경험을 만끽하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대표적인 B급 뮤지컬 ‘록키 호러쇼’
대표적인 B급 뮤지컬 ‘록키 호러쇼’
‘비급 뮤지컬의 지존’으로 불리는 <록키 호러쇼>도 오는 8월 다시 무대에 오른다. 자동차 고장으로 낯선 성을 방문하게 된 브래드와 자넷이 프랑큰 퍼터 박사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메리 셜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해 다양한 비급 호러영화와 공상과학 영화를 대거 패러디한다. <록키 호러쇼> 홍보담당자는 “특히 단 한 번 열리는 8월25일 밤 10시 ‘심야공연’에서는 비급 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광란의 밤’을 선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야” 등의 어록으로 유명한 ‘병맛러’ 유병재 신드롬도 화제다. 그의 스탠딩 코미디쇼 <블랙 코미디>는 한국 코미디 최초로 넷플릭스를 통해 방송됐고, 두 번째 공연인 은 1분 만에 전석(4000석) 매진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웃픈 감성’을 담은 그의 농담집과 다양한 굿즈도 젊은층의 환호를 받으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 상업성의 최정점, 광고에도 비급 바람

대중문화계를 휩쓴 비급 감성은 팔리는 것을 지상 목표로 가장 안전한 선택을 하는 광고계까지 번졌다. 대부분 유튜브나 에스엔에스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비급 광고는 상품의 장점을 점잖게 설명하는 텔레비전·라디오 광고와 달리 우스꽝스러운 병맛 정서를 흩뿌리지만 대체 무엇을 위한 광고인지 끝까지 보기 전엔 잘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배달의 민족이 기획한 ‘치믈리에 자격시험’
배달의 민족이 기획한 ‘치믈리에 자격시험’
선두에 선 것은 배달 앱인 ‘배달의 민족’(배민)이다. 배민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우아한형제들은 대상 수상작에 ‘치킨 365마리 자유이용권’을 주는 ‘배민 신춘문예’를 4회째 운영하고 있다. 올해엔 12만편이 넘는 응모작이 쇄도했고, 수상작인 ‘박수칠 때 떠놔라, 회 ’, ‘자장면 식히신 분, 혼나야겠네’ 등은 지하철 옥외 광고로 도배됐다. 지난해 수상작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는 ‘2017년 최고 유행어’로 등극할 정도였다. 배민은 이 밖에 공인 민간 자격증을 발급하는 ‘치믈리에(치킨+소믈리에) 자격시험’ 등 ‘비급 광고’와 ‘비급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셀프 디스’도 마다않는 엘지생활건강의 동영상 광고
‘셀프 디스’도 마다않는 엘지생활건강의 동영상 광고
유통업계에서는 엘지(LG)생활건강의 ‘엘지 빡치게 하는 노래’라는 동영상 광고가 히트했다. 불토(불타는 토요일)에 클럽에 가려다 광고주인 엘지 때문에 일을 해야 하는 크리에이터의 ‘빡친 감정’을 경쾌한 음악과 각종 비속어, 어설픈 병맛 그림 등으로 표현한 광고다. 정작 상품에 대한 내용은 맨 마지막에 단 한 줄 등장할 뿐이다. 엘지생활건강 관계자는 “처음부터 젊은층을 겨냥한 ‘병맛 느낌’으로 컨셉을 잡아 의뢰를 했기에 ‘회사를 디스하는 내용’마저 컨펌을 받은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재밌다는 반응과 함께 상품에 대한 인지도 역시 상승했다는 평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애경산업 역시 ‘이빨청춘(치약)’, ‘이쓸 때 잘해(칫솔)’ 등의 문구를 붙인 양치세트, ‘넌 내게 목욕감을 줬어(샴푸)’, ‘다 때가 있다(때수건)’, ‘이거 다 거품이야(비누)’ 등 언어유희를 활용한 상품을 내놓으며 소비자의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비급 광고는 보수적인 금융업계까지 집어삼키고 있다. 신한생명은 최근 유튜브 스타 ‘장삐쭈’와 협업한 ‘병맛 더빙 광고’를 내놨다. 피곤한 삶을 살다 갑자기 유방암에 걸린 대기업 부장이 걱정하는 아내에게 “걱정하지 마. 나이스 신용평가에서 11년 연속 보험금 지급 능력 평가 AAA를 받은 신한생명 가입해놨어”라며 대놓고 광고하는 막장 느낌의 이 영상은 장삐쭈의 애니메이션 더빙 시리즈 ‘급식생’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게 컨펌이 나네 ㅋㅋㅋ”라는 장삐쭈의 댓글도 곁들여진다. 각종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이 광고는 지난달 30일 공개 뒤 2주 만에 130만 뷰를 넘어섰다.

충주시청이 제작한 ‘고구마 축제’ 홍보 광고
충주시청이 제작한 ‘고구마 축제’ 홍보 광고
비급문화는 심지어 공공기관에까지 파고들었다. 충주시청이 운영하는 비급감성 에스엔에스와 어설픈 ‘고구마 축제 포스터’, 지질한 감성을 극대화한 ‘세계무술축제 홍보 동영상’ 등은 젊은층 사이에 큰 화제가 됐다.

■ 콘텐츠의 소비자도 생산자도 ‘비급 세대’

비급 콘텐츠가 대중문화의 ‘주류’로 파고든 데는 에스엔에스와 유튜브 등이 대세로 자리 잡은 ‘시대’의 역할이 컸다. 출퇴근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고 웹툰과 동영상을 감상하는 2030세대는 비급 콘텐츠를 수용하는 데 훨씬 더 유연하고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텔레비전의 매체력이 모바일로 이동한 지 오래다. 스마트폰 영상의 소비 패턴에 맞게 짧은 시간에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자극적 직설적 재미가 강조된 비급 콘텐츠가 증가했다”고 짚었다. 이어 “젊은층이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정답, 올바름 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좀 떨어지면 어때? 재밌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공감하는 것”이라며 “에스엔에스를 통해 ‘공유’ 하고 ‘좋아요’를 누르며 함께 놀 수 있다는 점도 비급 콘텐츠의 확산을 가져온 바탕이 됐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최근 비급 콘텐츠의 전방위적 등장의 배경엔 콘텐츠의 소비자(2030)뿐 아니라 생산자(3040) 역시 앞서 비급 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란 ‘비급세대’라는 특징이 자리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동일한 ‘감성’을 공유하기에 이런 비급 콘텐츠가 더 광범위한 공감을 끌어내며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튼튼이의 모험>의 고봉수 감독(42)은 “나 역시 ‘동북아 루저들의 별’로 불리는 주성치, ‘비급 영화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을 보며 자랐다. 비급문화를 자연스레 체득한 젊은 감독들이 비슷한 정서적 교감을 하는 2030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장인성 배달의 민족 마케팅 이사(44) 역시 “우리 마케팅팀은 대부분이 서른살 언저리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젊은층이 향유하는 놀이문화 중 ‘적당히 새롭고 적당히 익숙한 것’을 뽑아내 활용하는 마케팅을 한다. 예를 들어 치맥의 인기를 타고 눈을 가리고 치킨 부위를 감별하는 놀이가 한창 유행했는데, 팀원끼리 이 놀이를 하다 마케팅으로 연결한 것이 바로 치믈리에 자격시험”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이블데드’
뮤지컬 ‘이블데드’
뮤지컬 <이블데드>의 손나은 연출(35)도, 충주시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고 에스엔에스 홍보를 담당한 공무원들도 모두 삼십대 초반으로 같은 세대다.

에스엔에스와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놀이문화는 패러디를 양산하며 비급 콘텐츠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경계마저 허물어 버린다. 누리꾼들이 비급 콘텐츠의 수많은 패러디물을 양산하거나 일반인 유튜버·트위터리안이 이름을 날리며 상업광고의 제작 주체로 거듭나는 현상이 이에 해당한다. 실제로 엘지생활건강 광고를 만든 ‘반도의 흔한 애견샵 알바생’ 허지혜씨나 신한생명의 광고를 제작한 ‘장삐쭈’는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로 시작해 상업 크리에이터로 유명해진 경우다.

하재근 평론가는 “동영상 편집기술이 쉽고 간편해진 데다 유튜브나 에스엔에스가 활성화되면서 소비하기도 쉽고 창작하기도 쉬운 비급 콘텐츠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허물면서 더욱 빠르고 수월하게 대중의 일상에 침투하고 있다”고 짚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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