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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이준익 감독 “가슴 찡한 ‘청춘 랩’…꼰대의 진정성도 녹였죠”

등록 2018-06-26 04:59수정 2018-06-26 09:10

13번째 영화 ‘변산’ 몰고온 이준익

내달 4일 개봉…‘청춘 3부작’ 최종
무명 래퍼 학수의 흑역사 돌파기
‘라디오 스타’ 촌스런 감성 떠올려
“이번엔 록 대신 랩이 세대간 고리
망하지 않는 게 내 작업 목표죠”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저는 나이 육십 먹은 꼰대에, 충무로 판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비주류에, 감각보단 서사에 의존하는 촌스러움을 가진 감독이잖아요? <변산>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싶어요.”

충무로의 ‘영원한 이야기꾼’ 이준익(59) 감독이 열세 번째 영화 <변산>으로 관객을 찾아왔다. “농부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농사일을 하러 가듯, 아침에 일어나면 성실하게 영화 찍는 것이 직업”이라는 그는 지금까지 거의 매해 신작을 내놓았다. 때로는 문화적 입장에서 역사를 풀어내는 시대극으로, 때로는 고단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의 어깨를 도닥이는 현대극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겼던 이준익 감독이 이번엔 ‘랩’과 ‘사투리’라는 이질적인 두 가지 소재를 절묘하게 엮어냈다. 빡세지만 순수한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변산>(7월4일 개봉)의 개봉을 앞두고 종로구 삼청동에서 이준익 감독을 만났다.

“<동주>, <박열>, <변산>을 엮어서 ‘청춘 3부작’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그건 ‘홍보’하기 편한 명명법이에요. <변산>은 청춘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한편으론 주인공 학수와 학수 아버지, 학수와 친구들 등 ‘관계’의 문제를 비롯해 우리에게 ‘고향’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죠. ‘청춘영화’만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 영화를 봐 주셨으면 해요.”

<변산>은 ‘서울 출신 고아’를 자처하며 고향을 등진 학수(박정민)의 이야기다. 학수는 고시원에 거주하며, 생계를 위해 온갖 알바에 매진하고, 래퍼를 꿈꾸며 <쇼미더머니>에 6연속 출연했다 탈락한, 이 시대의 고달픈 청춘이다. 그런 학수가 어느 날 고향 친구 선미(김고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고향 변산의 한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등 떠밀려 고향으로 향한 학수는 어이없는 사건에 휘말리며 변산에 발이 묶이고, 동창들과 만나며 점차 지우고 싶었던 과거의 흑역사와 대면하게 된다.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준익 감독.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학수의 처지와 속마음이 줄곧 현란하지만 가슴 찡한 가사의 ‘랩’에 실려 전해지는 점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고향’과 ‘사투리’라는 다소 촌스러운 감수성을 상쇄하며 젊은 층에 어필하는 이유다. “<라디오 스타>(2006)나 <즐거운 인생>(2007)에서 보여줬듯 사실 저는 ‘록’에 기반을 둔 세대죠. ‘랩’ 좀 아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전혀 몰라요. 모르는 건 죄가 아니잖아요?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게 죄지. 하하하. 배우고픈 마음만 있으면 돼요. 사실 록과 힙합은 그 뿌리가 비슷해요. 70년대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추구했던 록의 역할을 요즘엔 랩이 하죠. 록이 ‘공동체’라면, 랩은 ‘개인주의’랄까?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고백하죠. 기성세대에겐 소음으로만 여겨지던 랩이 주인공의 내면과 연결될 때, 세대 간의 이해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어서 택한 ‘고리’예요.”

이 감독은 ‘선미’의 입을 빌어 학수에게 끊임없는 각성과 반추를 요구하는 영화 속 ‘꼰대스러움’에 대해서도 나름의 ‘철학’을 내놓았다. “꼰대성을 악덕으로만 치부하지 말자, 청춘의 미덕을 존중하지만 꼰대의 미덕도 한 번 살펴보자는 거죠. 누구나 나이 들면 결국 꼰대가 돼요. 학수 아버지는 꼰대 중의 꼰대인데, 학수에게 소리치죠. ‘때려, 때려봐. 이눔아!’라고. 한마디로 ‘나를 밟고 넘어가라’는 외침이에요. 이것이 바로 꼰대의 진정성 아닐까요?”

영화 <변산>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영화 <변산>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어찌 보면 <변산>은 10여년 전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의 연장선에 있다. 살짝 촌스러운 감성도, 위악적 대사 안에 담긴 따뜻한 정감도 두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맞아요. 올드하죠. 감독은 전작에서 가장 멀리 도망가는 작품을 찍고 싶어해요. 그런데, 저는 도망가도 결국 10여년 전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인거죠. 열 세편이면 감독 재능이 바닥 날 때도 됐잖아요? 하하하. 뭐 어때요? 일리아드의 <오디세이>도, 셰익스피어의 <햄릿>도 끊임없이 변주되는데.”

이준익 감독은 “배우·스태프에게 모든 걸 맡기고 감독은 조율만 한다”는 자신의 ‘감독론’을 <변산>에서도 이어갔다. “자신이 가사를 쓰고 랩을 한 박정민, 8㎏을 찌우고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한 김고은을 두고 ‘감독 지시냐’고 묻는데, 저는 배우에게 어떤 디렉션도 주지 않아요. 박정민은 ‘평범하지만 오래가는 매력’을, 김고은은 ‘전작에서 보여주지 않은 새로움’을 스스로 찾아낸 거죠. 랩도, 사투리도 ‘전문가’에게 맡기고 감독은 그들을 조율하고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는 심부름만 잘하면 돼요.”

영화 <변산>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영화 <변산>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런 ‘감독론’이 충무로에서 오래 버틴 비결이라고도 했다.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많은 명감독이 스러졌지만 <사도>, <동주>, <박열>, <변산>까지 잇달아 ‘흥행작’ 반열에 올리며 건재를 과시해 온 그다. “저는 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이 희박해요. 영화는 감독의 예술, 뭐 이런 거 없어요. 배우·스태프와 ‘공동작업’을 한다는 연대감이 있을 뿐. ‘돈’을 쥔 자는 점점 젊어지는데 감독은 점점 나이를 먹으니 ‘장유유서’가 크게 작용하는 한국 영화판에서 그 격차가 큰 장애물이 돼요. 그런데 전 젊은 사람과도 말을 트고 친구처럼 지내죠. 어찌 보면 실력이 아닌 성격이 좋은 거지. 아니, 성격을 실력 삼는 건가? 하하하.”

그는 오늘도 어제처럼, 내일도 오늘처럼 꾸준히 영화를 찍을 거라고 했다. 목표는 “망하지 않는 것”이다. “제 흑역사는 <평양성> 망해서 은퇴 선언하고, 그걸 번복한 거죠. 망하지 않으려면 서사의 구조에 따라 딱 맞는 예산으로 찍어야 돼요. <동주>(5억), <박열>(26억)처럼. 그나저나 이제 네 편째 흥행했으니 망할 때가 다가오는데…. 그 시점이 <변산>은 아니겠지? 하하하.”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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