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티캐스트 제공
올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의 마음을 훔친 ‘도둑(만비키) 가족’의 이야기가 한국 관객의 마음도 훔칠 수 있을까?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 <만비키 가족>이 <어느 가족>(26일 개봉)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상륙한다. 지난달 8일 일본에서 먼저 개봉한 이 영화는 3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3주차까지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다. 고레에다 감독의 최고 흥행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뛰어넘은 기록이다.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티캐스트 제공
영화는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아들 쇼타(죠 가이리)의 ‘슈퍼마켓 좀도둑질’로 시작한다. 잘 짜인 ‘세트 플레이’로 식료품과 생필품을 훔친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름한 건물 앞에서 추위에 떠는 작은 소녀를 발견하고 데려온다. 할머니 하쓰에(기키 기린)와 아내 노부요(안도 사쿠라), 여동생 아키(마쓰오카 마유)까지 다섯 식구가 살을 부비며 사는 다 쓰러져가는 비좁은 목조주택은 이미 차고 넘치게 북적인다. “왜 (슈퍼에서) 샴푸를 안 가져왔냐”고 투덜대는 아키의 태도, “내 연금만 노린다”는 할머니의 대꾸에서 도둑질은 마치 ‘쇼핑’을 하듯 벌어지는 일상이며 할머니의 연금은 이들의 주 수입원임을 알 수 있다.
가족들은 “돌려보내라”고 핀잔을 주지만, 이내 학대를 받아 몸에 화상과 멍투성이인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에 대한 ‘연민’이 싹튼다. 자연스레 유리는 이들의 가족이 된다. 어느 날 유괴된 것으로 오인된 유리의 행방을 찾는 뉴스가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고, 쇼타가 도둑질을 하다 경찰에 붙잡히면서 어쩐지 수상쩍은 이 가족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티캐스트 제공
고레에다 감독은 도둑질로 먹고 살만큼 가난하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은 ‘수상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천착해 온 ‘가족’과 ‘도시 빈민’에 대한 문제의식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감독의 팬들에게 이 영화가 ‘종합선물세트’ 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우선 한꺼풀씩 벗겨지는 가족의 비밀을 통해 영화는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뿌리 깊은 ‘혈연중심 가족주의’에 대한 의문은 고레에다 감독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에서 던졌던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 학대와 방치, 소외를 모른 척하지 않고 서로를 “선택하고 선택받아” 이룬 이 ‘대안 가족’이 과연 ‘혈연가족’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
끝내 오사무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던 쇼타가 영화의 마지막에 멀어지는 오사무를 보며 ”아빠”라고 읊조리는 장면, 할머니 하쓰에가 삶의 마지막 여행에서 “다들 고마웠어”라고 중얼거리는 장면, 철창에 갇힌 노부요가 “행복했어. 이건 내 삶의 덤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코끝을 시큰하게 만든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에서 할머니가 담근 10년 된 매실주를 나눠마시며 서로에게 ‘가족’이 돼줬던 네 자매의 모습을 볼 때처럼.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티캐스트 제공
고레에다 감독은 “죽은 부모의 연금을 계속 받다 적발된 가족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됐다. 사람들이 더 큰 범법행위는 눈감아주면서 연금 사건이나 좀도둑 문제에 훨씬 더 공분하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경제 규모에 맞지 않게 높은 상대적 빈곤율을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보단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일본의 분위기에 대한 고레에다 감독의 문제의식은 <아무도 모른다>(2004)와 맞닿아 있다.
영화는 일본 사회파 영화의 특징을 보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도둑질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쇼타에게 “가게에 진열된 물건은 아직 누구의 것도 아니다. 망하지 않을 만큼만 훔치면 된다”는 나름의 철학을 설파하거나, 새 가족이 된 유리가 도둑질에 합류하는 것을 “워크 셰어”에 빗대 설명하는 장면 등에선 미소가 번진다. 배우들의 명연기도 영화를 한층 살린다. 특히 안도 사쿠라의 연기가 일품이다. 후반부 경찰 심문 장면과 면회 장면에서 보여주는 ‘눈물 연기’는 절제미 속 격조와 내공이 빛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