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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총격전 없어도 심장이 쫄깃…남다른 한국형 스파이

등록 2018-08-01 17:58수정 2018-08-01 21:00

8일 개봉 영화 ‘공작’

대북 공작원 ‘흑금성’ 실화 바탕
황정민·이성민 섬세한 심리 연기
정체성 고뇌 남북 스파이 그려내
영화 <공작>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 <공작>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미션임파서블>의 에단 헌트,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 흔히 ‘스파이물’을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대표 이미지다. 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깜짝 놀랄 신무기, 인간 한계치를 넘나드는 호쾌한 액션, ‘○○걸’로 불리는 아찔하게 섹시한 미녀를 상상했다면, ‘한국형 스파이 영화’를 내세운 <공작>(8일 개봉)은 그 모든 기대를 비켜가는 의외의 작품이 될 듯하다.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지극히 건조하고 차가우며 현실적인 스파이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1990년대 대북 공작원으로 활동했던 암호명 ‘흑금성’의 이야기를 뼈대로 한다. 199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한반도엔 핵위기가 확산된다. 육군 정보사 출신 박석영(황정민)은 안기부 요원으로 발탁돼 북핵의 실체를 확인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경남 마산 출신 대북 사업가로 위장해 베이징에 들어간 박석영은 우여곡절 끝에 베이징 주재 북한 고위 간부 리명운(이성민)에게 접근한다. 오랜 공작 끝에 리명운의 믿음을 얻게 된 박석영은 그를 통해 김정일까지 만나게 된다. 하지만, 97년 대선을 앞두고 남과 북 수뇌부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한 박석영은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던 신념, 스파이로서의 정체성을 앞에 두고 갈등하며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영화 <공작>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 <공작>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공작>에는 피와 살이 튀는 액션이나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대체하고도 남을 만한 것은 다큐멘터리보다 더 생생하게 재현된 북한의 전경이다.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드문드문 고층빌딩이 선 평양의 전경이나 자동차 창문 사이로 비치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동상과 시가지의 모습, 위압적이기까지 한 김정일의 별장 등이 주는 현실감은 놀라울 정도다. 여기에 박석영과 리명운, 그리고 북한 보위부 과장 정무택(주지훈) 사이를 관통하는 ‘심리전’은 그 어떤 총격전이나 자동차 추격장면보다 팽팽하고 밀도 높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박석영을 테스트하려는 리명운의 각종 제안, 그 속에 도사린 덫을 피해 신뢰를 얻기 위한 박석영의 대응방식은 오직 ‘말’로 구현된다. 그리고 이 ‘말’은 박석영-리명운을 넘어 ‘핵 개발’과 ‘교류’라는 두 가지 방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남북 대치 상황을 무게감 있게 그려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몰입감을 끌어올리는 것은 90년대를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들이 실제 뉴스 화면과 함께 펼쳐진다는 점이다.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안기부의 총풍사건을 비롯한 북풍공작, 50년 만의 정권교체로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97년 대선, 남북 연예인의 합작 광고 촬영 등 그 시대를 명징하게 떠올리게 하는 장치들이 여럿 등장한다. 무엇보다 ‘국가와 민족’을 내세운 안기부의 정치공작이 ‘이명박근혜 정권’까지 이어진 국정원의 행태와 오버랩 되며 ‘현실적인 분노’를 자아낸다.

영화 <공작>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영화 <공작>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 제공
<공작>은 분단 체제의 모순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을 고민하는 스파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냉전을 배경으로 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2)를 떠올리게 한다. 게리 올드먼이나 톰 하디를 능가하는 황정민·이성민의 섬세한 연기력 역시 <팅커 테일러…>에 비견할 만하다. 올해 칸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진출해 “총보다 더 강한 말의 액션”이라는 평가를 받은 <공작>은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를 잇는 윤종빈 감독의 굵직한 필모그래피가 될 듯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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