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 품은 괴물로 흥미 끌고
‘사극본좌’ 김명민 내세웠지만…
검은 속내 악역엔 ‘또경영’
어,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잖아
‘한복 입은 덕선이’ 느닷 로맨스
예상 그대로 권선징악적 결말
추석관객 눈높이 맞출 수 있을까
‘사극본좌’ 김명민 내세웠지만…
검은 속내 악역엔 ‘또경영’
어,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잖아
‘한복 입은 덕선이’ 느닷 로맨스
예상 그대로 권선징악적 결말
추석관객 눈높이 맞출 수 있을까
중종 22년, 역병을 품은 괴이한 짐승 ‘물괴’가 나타나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인다. 조정에서 축출됐던 내금위장 윤겸(김명민)과 딸 명(혜리), 부하 성한(김인권)은 임금(박희순)의 명령으로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나선다. 한국 최초 ‘크리처 액션 사극’ <물괴>(12일 개봉)의 줄거리는 요약하면 이렇다. 장르적 신선함에 사극 본좌 김명민, 아이돌 출신 혜리, 명품 조연 김인권 등이 가세한 <물괴>는 과연 ‘사극이 정답’이라는 추석을 맞아 관객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주의: 일부 스포일러 포함)
■ 예고편보다 나아진 CG…반전매력 물괴 <물괴>는 예고편 공개 후 국내 크리처 영화의 대명사인 <괴물>(2006)과 비교 당하며 ‘악플’에 시달렸다. “<괴물>이 천만이니 <물괴>는 만천이냐”는 댓글이 대표적이다. 125억짜리 씨지가 조악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영화를 본 ‘선발대’는 안도하고 있다. 물괴가 예고편보다는 한층 업그레이드됐다는 것.
중종실록엔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다”고 묘사돼 있지만, 영화 속 물괴는 크기와 기괴함이 훨씬 압도적이다. 역병을 품고 있어 몸 전체가 울퉁불퉁 붉은 종기로 뒤덮여 있고, 눈이 퇴화해 청각에 의존한다. 큰 덩치에 견줘 움직임은 재빨라 산과 절벽은 물론 궁궐 지붕과 담장을 오르내리며 마구잡이로 사람을 먹어치운다.
하지만 다소 비호감인 ‘외모’가 흥행에 독이 될까 걱정되는 찰나 밝혀지는 ‘물괴의 과거’는 반전매력! 방울소리에 귀를 쫑긋하던 ‘귀여운 초롱이’가 이렇게 흉악해졌다니, 연민이 솟구쳐 물괴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역효과가 우려된다.
■ 사극 본좌 김명민, 짝꿍만 바꾼 <조선명탐정>? ‘사극 본좌’라 불리는 김명민이지만, <물괴>에선 오히려 이런 이미지가 독이 된 듯하다. <불멸의 이순신> 속 장군처럼 결의에 불타다가 한순간 <조선명탐정> 속 김민처럼 ‘비(B)급 유머’를 구사하니 관객 입장에선 혼란스럽다. 특히 김인권과 더불어 ‘덤앤더머’ 같은 모습을 보여줄 땐 오달수에서 김인권으로 짝꿍만 바꿔 <조선명탐정>을 찍은 것인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시감이 드는 캐릭터는 이들뿐이 아니다. 왕을 몰아내려는 검은 속내를 드러내는 영의정 심운 역을 맡은 이경영은 ‘또경영’이라는 별명만큼 익숙하고 진부한 악역을 연기한다. 윤겸과 대립하는 착호갑사 수장 박성웅 역시 그간의 이미지를 답습할 뿐이다.
■ 덕선이가 보이는 혜리…아이돌 체력은 엄지 척 <응답하라 1988> 덕선 역할로 이름을 알린 혜리는 스크린 데뷔작 <물괴>에서도 ”무엇을 연기하든 덕선이가 보인다”는 평가를 되새김질하게 한다. 특히 “아버지~아버지~”를 외치는 가공할 ‘목청’은 <응팔> 속 “왜 나만 덕선이야~”의 울부짖음을 떠올리게 한다. 사극 톤 대사를 고집하지 않은 작품임에도 설익은 혜리의 연기는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급박한 순간 뜬금없이 등장하는 허 선전관(최우식)과의 러브라인 역시 너무 겉돈다.
물론 아이돌 경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장면도 있다. 칼군무를 소화하며 갈고 닦은 체력은 놀랍다. 극 중 내내 뛰고 달리는 데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다. 안무로 다져진 다리찢기를 응용한 급소 차기도 빵 터지는 웃음을 안긴다.
■ 무엇을 상상하든 벗어나지 않는 전개와 결말 왕좌를 둘러싼 끊임없는 정쟁과 민심이반, 한국 영화가 벗어나지 못하는 주제인 가족애, 권선징악 서사에 갇힌 강박적 해피엔딩…. <물괴>는 추석 시즌 가족 관객을 불러들이려는 안정적 선택지를 골라잡았다. 하지만 이제 좀 지겹지 않나.
특히 마지막엔 ‘설마 내가 예상하는 그 결말은 아니겠지’하는 희망마저 배반한다. 역사에 별 관심 없는 관객도 <신기전>(2008)에 나오는 세종 시대 로켓 화기 신기전을 떠올리면, 조선의 화약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그런데, 주인공은 화염도 뚫는 무쇠팔 무쇠다리 슈퍼히어로인가. 아니면 경복궁 근정전이 목조가 아닌 석조 콘크리트였단 말인가. 상식을 의심케 하며 극장을 나서기도 전에 검색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영화 <물괴>의 한 장면.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영화 <물괴>의 한 장면.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영화 <물괴>의 한 장면.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영화 <물괴>의 한 장면.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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