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 영화 제작 방식 새바람 몰고 온 제작사 아토의 4명의 프로듀서가 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에서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0년 외국에 나갔을 때 ‘줄리아’라고 소개하니, 사람들이 ‘한국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외국인들 편하게 부르라고 영어 이름 쓴 건데…. 그 경험 때문에 회사 이름을 지을 때, 순우리말이면서 외국인도 부르기 쉬운 이름을 찾았죠.”(김지혜) “놀림도 많이 받았어요. ‘차라리 아토피로 해라’ 뭐 이런?”(제정주) “요즘은 아토가 카페, 심지어 치즈케이크 이름으로도 쓰이더라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상표등록 해 두는 건데…. 푸하하.”(김순모)
‘회사 이름이 왜 아토냐’는 첫 질문부터 폭풍 수다를 떨듯 릴레이 대답이 쏟아졌다. ‘선물’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이름을 가진 ‘아토’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 기획 전공 출신인 제정주, 김지혜, 이진희, 김순모 등 프로듀서 4인방이 2014년 뭉쳐 만든 제작사다. 창립작 <우리들>(2016·윤가은 감독)이 베를린영화제에 진출하고, 그해 국내 독립영화상을 휩쓸며 주목을 받은 뒤 <용순>(2017), <홈>(2018), 최근작 <살아남은 아이>(상영중)까지 독창적 작품을 선보이며 충무로에 새 바람을 일으킨 ‘아토 4인방’을 최근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에서 만났다.
‘아토’의 창립은 “계획이 아닌 즉흥”으로 시작했다. “학교 영화제 기간에 우연히 넷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제작이나 배급을 해 보면 어떨까?’라는 말이 나왔어요.”(김지혜) “처음엔 장편 제작까지 생각한 건 아니고, 기획개발도 하고 단편 배급도 하는 구심점을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 정도였죠.”(이진희) 김기덕 필름에서 일한 김순모 피디, 명필름 제작팀 출신 제정주·김지혜 피디, ‘영화사 봄’에서 제작관리를 했던 이진희 피디까지 한예종 입학 전부터 꾸준히 현장 경험을 쌓았던 넷이기에 통하는 부분이 많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회사를 차렸으니 각자 역할 분담이 있을 터. 하지만 이들은 “그런건 희미해진 지 오래”라고 입을 모았다. “지금은 다들 만능이에요. 사실 구조로 보면 회사 4개가 모여있는 셈이라 자기 프로젝트를 나머지 3명이 도와준다는 느낌이 강해요.”(김지혜) “제가 <살아남은 아이>를 제작하면, 나머지는 사소하게는 보조출연 관리까지 다양하게 어시스트를 해 주는 거죠.”(제정주) “아, 제가 얼굴마담이라는 것 정도가 유일하게 유지된 역할이랄까? 푸핫.”(김순모) “오해 마세요. 잘 생겨서가 아니라 청일점이라서. 하하하.”(이진희)
만 5년 동안 유일하게 지켜 온 원칙이라면 ”따로 또 같이”라는 모토 정도다. ‘아토’ 안에서 제작하기도 하지만, 밖에서도 각자 원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를테면 김순모 피디는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를, 제정주 피디는 김인선 감독의 <어른도감>을 밖에서 따로 제작하는 식이다. 또 ‘아토’ 안에서 여러 작품이 한꺼번에 맞물리기도 한다. “<우리들>이 개봉할 때 <용순> 촬영에 들어가고, <용순> 다 끝내기 전에 <홈> 제작 들어가고…. 각자가 피디면서 제작자니 겹치면서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죠.”(이진희)
개성 강한 네 명이라 보는 눈이 다를 법도 한데, ‘아토’ 이름을 걸고 제작할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까? “만장일치가 원칙이죠. 반대가 있으면, 피디 개인이 밖으로 가지고 나가 따로 작업하면 되니까요. 물론 시나리오를 놓고 가열차게 설득과 토론도 해요.”(이진희) “취향이 서로 달라도 피디로서의 판단은 비슷하더라고요.”(김순모) 내부 논쟁이 가장 치열한 작품은 뭐였을까? “<소공녀>가 2:2로 갈렸어요. ‘광화문시네마’에서 제작대행 의뢰가 온 작품인데, 시나리오만 봤을 땐 광화문시네마의 색깔이 짙어 전 반대했어요. 김순모 피디가 전고운 감독의 가능성을 보고 밖에 나가 광화문시네마에서 제작했어요. 근데 막상 완성품을 보니 너무 괜찮은 거죠. 블랙코미디의 농도 조절이 잘 됐더라고요. ”(김지혜)
‘아토’의 작품엔 특이하게 아이들이 많이 나온다. 네 작품 모두 초등생 혹은 중고생이 주인공이다. 이유가 뭘까? “모두 싱글이라 아직 부모의 시선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아이 시선에 머물러 있어서? 하하하”(김지혜) “독립영화가 예산이 작으니 소재 측면에서 한계가 있어요. 감독들이 유년시절을 투영해 가족 이야기나 성장담 등을 많이 다루는 듯해요. 주변 이야기니 잘 뽑아낼 수 있기도 하고요.”(김순모)
독립영화로만 선을 긋고 시작한 것은 아닌데, 현실은 지금까지 ‘아토’를 독립영화의 틀에 묶었다. 다른 소규모 제작사와 같이 ‘아토’도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투쟁해왔다. “독립영화는 제작에서 배급까지 모든 과정이 불안정하잖아요? 영진위 등 공적기관의 제작·배급지원에 기대는 부분이 많죠. <홈>을 빼고는 손익분기점을 다 넘기긴 했지만, 회사를 유지하고 각각 먹고 살 수 있는 순환구조를 만드는 데 대한 고민이 많아요.”(제정주) 하지만 ‘아토’는 여전히 잰 발걸음으로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살아남은 아이>에 이어 윤가은 감독의 두번째 장편 <우리집>이 촬영 중이고, <눈을 감고>(정승민 감독)는 하반기 촬영에 들어간다. 상업영화도 구상 중이다. “<살아남은 아이> 신동석 감독과 상업영화 <물속>(가제)을 기획 중이에요. 살인범을 쫓는 여형사 이야기인데, 액션스릴러가 아닌 심리 스릴러입니다.”(제정주)
‘아토’는 지난 5년 동안 쉼표도 마침표도 찍은 적이 없다. 계속 작품을 만들수록 단단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명대사로 ‘그럼 언제 놀아?’를 꼽는데, 정말 우린 놀 틈이 없네요. 더 튼튼한 자체 생존 동력을 만들 때까지.”(김순모) “그래도 아토를 보며 영화제작을 꿈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뿌듯해요. 동기부여도 되고요.”(이진희) “아직 우린 젊으니까.”(제정주) 젊다는 걸 강조하면서도 “절대 나이는 적지 말라”는 당부로 4인방은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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