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개막작인 <던 월>의 한 장면. 미국 요세미티의 900m 높이 직벽을 올라가는 두 등반가의 이야기다. 영화제 사무국 제공.
행사장 계단엔 커다란 배낭이 도열해 있었다. 전국스포츠클라이밍 대회가 열리는 암장 앞엔 수백여명이 텐트를 치고 앉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결 겨루는 ‘속도’ 종목과 로프 없이 오르는 ‘볼더링’에 참가한 선수들을 응원했다. 6곳에 설치된 가설 극장 안팎으로 사람들이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제3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UMFF) 이틀째를 맞은 8일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일대엔 곳곳에서 몰려든 산악인과 영화를 관람하러 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7일 저녁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움프시네마에서 제3회 울산세계산악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영화제 사무국 제공
영남알프스란 태백산맥 남쪽 끝자락에 있는 가지산·신불산·간월산 등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군을 가리킨다. 울산·밀양·양산·경주·청도 등 5개 시·군에 걸쳐 있는데 이중 울주에서 시작하는 등산로 이용이 잦다. 한국산악회 등산학교 강사인 김병철씨는 “산세가 유장하게 이어지면서도 푸근하고 온화한 기운 때문에 예로부터 한국의 알프스로 불렸다”고 말했다. 울주군은 이 영남알프스라는 천연의 자원을 이용해 2016년부터 산악영화제를 진행해왔다. 올해 66회를 맞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산악영화제로 자리매김한 이탈리아 트렌토 영화제, 1976년부터 로키 산맥 기슭에서 열리는 캐나다 벤프산악영화제에 비하면 이제 젖먹이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의미깊은 행사다. 올해엔 경쟁부문 본선에 진출한 27편(41개국)을 포함해 144편(42개국)이 선보인다. 배창호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스턴트맨도, 컴퓨터그래픽도 없는 무공해 청정영화들만 골랐다”고 했다.
제3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울주비전’ 중 하나로 선정된 다큐멘터리 <어머니 산>. 네팔 최초의 여성 산악 가이드 파상(왼쪽)과 싱글맘이자 펑크록 뮤지션인 사리나가 모험에 나서는 스토리다. 영화제 사무국 제공.
이런 영화를 즐기기엔, 산을 애정하는 사람만큼 적절한 동반자가 없을 터. 국내 이름난 산들은 물론 ‘전성기’엔 요세미티(미국)·알프스(스위스)·안나푸르나(네팔)·엘부르즈(러시아) 등 해외 원장을 다녔던 언론인 출신 ㅇ씨와 함께 7일 영화제를 찾았다. 11일까지 닷새간 열리는 영화제의 시작을 알린 영화는 <던 월>. 지난 2015년 요세미티 엘케피탄의 910m짜리 암벽 ‘던 월’을 올라간 두 등반가, 토미와 케빈의 이야기다. 영화제에서 가장 큰 극장인 움프시네마를 꽉 채운 관객 800여명은 손가락·발가락을 집어넣을 틈도 없어 보이는, 반질반질한 직벽을 올라가는 두 사람을 긴장 속에 지켜봤다. 주인공들이 험난한 구간에서 실패할 때마다 관객들의 깊은 탄식이 극장을 채웠고, 19일 만에 등반에 성공하자 관객들은 물개박수를 치면서 기쁨을 나눴다. 마치 던 월 밑에 장사진을 치고 주인공들을 격려하던 미국 시민들처럼, 영남알프스 기슭에 모인 관객들 또한 케빈과 토미를 열렬히 응원했다. 안정숙 인디스페이스 관장은 “영화가 상영되는 100분 동안 심장이 쫄깃쫄깃했다”며 “관객들이 모두 등반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다함께 공감하는 것이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제3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카일라스 가는 길>의 한 장면. 84살 노모와 49살 아들이 함께 2만km 육로 여행을 한다. 영화제 사무국 제공
울주영화제의 전문가 지원 프로그램 ‘울주 서밋’에 선정된 <카일라스 가는 길>(감독 정형민)은 8일 오전에 상영 일정이 잡혀있었는데, 극장 문이 열린 지 5분만에 티켓이 매진될 만큼 인기가 높았다. 이 작품은 49살 아들이 84살 노모를 모시고 바이칼 호수를 시작으로 몽골 평원, 고비 사막,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 타클라마칸 사막, 칭하이-티베트 고원을 지나 티베트인들의 성산, 카일라스까지 2만여km의 육로 여행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이번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됐다. 전작 <무스탕 가는 길>에서도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던 어머니 이춘숙씨는 <카일라스 가는 길>에서도 어리고 약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불교 신자로서의 깊은 신심, 호기심과 유쾌함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이번 영화제에서 ‘울주 비전’으로 선택된 프로그램 ‘여성 그리고 산’도 눈길을 끌었다. 남성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고산 등반·오지 여행·익스트림 스포츠에 도전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울주영화제 국제경쟁 분야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한 네팔 최초의 여성 산악 가이드 파상, 카트만두에서 펑크록 뮤지션이자 싱글맘인 사리나 두 여성이 함께 히말라야에 오르는 <어머니 산>은 16분짜리 짧은 다큐임에도 거친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여성들의 우정, 따뜻함과 강인함을 발랄한 시선으로 좇는다.
함께 영화제를 관람한 ㅇ씨는 “‘국제영화제’의 위상에는 모자란 허술한 시설과 가설극장의 조악한 디자인, 미숙한 운영이 아쉬웠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영남알프스에서 히말라야의 설산을 즐기고 오니 마치 ‘다른 세상’에 있다가 온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울주/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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