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은 한국영화 대작 4편의 각축장이 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지난 12일 개봉해 먼저 시장 선점에 나선 김명민·혜리 주연의 <물괴>를 시작으로 19일 조인성·설현의 <안시성>, 조승우·지성의 <명당>, 현빈·손예진의 <협상>이 잇달아 추석 시장 공략에 나선다. 대작 틈새에서 상영관은 적지만 관객의 취향을 저격할 소소한 영화도 즐비하다. 음식처럼 영화도 편식은 좋지 않은 법. 송편과 갈비찜 등 기름기 좔좔 흐르는 음식에 느끼해진 입맛을 깔끔하고 청량하게 만들어 줄 식혜 같이 시원한 영화를 소개한다.
애니메이션 <루이스>의 한 장면. 스마일이엔티 제공
■ 온 가족 함께라면 ‘에스에프 애니메이션’ 12세 미만의 어린아이를 둔 가족에겐 어른도 지루하지 않게 관람할 잘빠진 애니메이션 한 편이 절실하다. 이번 추석엔 <루이스>(20일 개봉)가 기다린다. <슈퍼배드>, <마이펫의 이중생활>을 만든 제작진이 함께 뭉친 <루이스>는 보기 드물게 에스에프(SF) 애니메이션을 내세운다.
지구의 TV홈쇼핑 채널에 빠진 외계인 모그·내그·와보는 ‘누비두비 마사지 매트’를 구하기 위해 지구로 왔다 불시착하게 된다. 외계인 연구에만 몰두하는 괴짜 아빠 때문에 아동보호소에 보내질 위기에 처한 지구 소년 루이스는 12살 생일을 맞아 외계인 삼총사와 만나게 된다. 지구를 떠나고 싶어하는 루이스와 쇼핑에 홀릭한 모그·내그·와보는 시끌벅적 코믹한 모험을 시작한다.
외계인과 유에프오(UFO) 같은 우주 이야기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 <루이스>는 소외당한 아이의 내면에 도사린 외로움에 관해 말한다. 루이스의 아빠는 현실 생활엔 빵점인 인물이다. 먼저 하늘로 떠난 엄마를 대신해 아들에게 관심을 쏟아야 하건만, 되레 루이스가 청소와 요리를 척척 해내며 아빠를 돌본다. 어른스러운 루이스의 행동 속에 도사린 아픔과 외로움에 짠한 마음이 솟구친다.
각 캐릭터가 내뿜는 귀여움은 시종일관 미소를 자아낸다. 행동대장 모그, 척척박사 내그, 프로먹방러 와보는 큰 눈과 머리 위에 솟은 뿔이 매력이다. 머리카락을 먹으면 변신하는 깜찍한 능력은 덤이다.
영화 <더 프레데터>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 업그레이드 된 살육본능 ‘프레데터’로 스트레스 확!! 명절만 되면 쏟아지는 “결혼해라”, “취업해라” 잔소리에 스트레스가 쌓인 ‘나홀로족’이라면 <더 프레데터>(상영 중)를 추천한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프레데터>(1987) 이후 <프레데터2>(1997)와 <프레데터스>(2010)가 나왔지만, 형만 한 아우 없다는 것만 증명했다.
원조 프레데터 이후 31년 만에 찾아온 이번 작품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프레데터의 모습을 선보인다. 다른 종의 디엔에이(DNA)를 빨아들여 더욱 치명적인 능력을 갖추게 된 외계 사냥꾼 프레더터의 습격으로 지구는 위기에 빠진다. 특수부대 대위 퀸(보이드 홀브룩)은 숲 속에서 프레데터와 격전을 벌이다 프레데터의 헬멧과 탈착식 무기를 몰래 빼돌려 집으로 보낸다. 아스퍼거증후군을 앓는 아들 로리(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이 무기를 갖고 놀다 프레데터의 레이더망에 걸리고, 퀸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진화생물학자 케이시(올리비아 문)와 전직 군인들을 모아 프레데터에 맞선다.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한층 잔혹해진 외계 사냥꾼 프레데터의 모습이다. 거대한 몸집과 진보된 능력을 바탕으로 잔혹한 사냥을 일삼는 초반부터 몰입감이 극대화된다. 사방에 피가 튀고 머리와 팔다리가 뜯겨 나가는 잔인한 장면은 압도적 위압감을 선사한다. 이번엔 전편보다 나은 속편임을 확신한 걸까? 셰인 블랙 감독이 선사하는 후속편 예고에 고어 팬의 기대감이 또다시 샘솟을 듯하다.
영화 <타샤 튜더>의 한 장면.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 잔잔하고 조용한 힐링을 원한다면 ‘타샤 튜더’ 전쟁같은 사회생활에 지친 직장인에게 추석은 간만의 휴식이다. ‘정원 가꾸기’ 달인이자 <소공녀>, <비밀의 화원> 등의 삽화가로 유명한 타샤 튜터(1915~2008)의 다큐멘터리(상영 중)로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일본에서 제작된 이번 다큐는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작이다. 타샤 튜더의 집과 정원을 직접 담을 수 있도록 허락받아 10년 동안 꼼꼼하게 기록했는데, 엠에스지(MSG) 한 술 없이도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역설한다.
1925년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태어난 타샤 튜더는 초상화 작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와 인형 만들기를 즐겼다. 1938년 동화 <호박달빛>을 통해 첫 선을 보인 고요하고 잔잔한 그의 화풍은 독자를 매료시킨다. 영화는 타샤 튜더의 일생을 그려내긴 하지만, 성공담보다는 자연주의적인 작품 경향을 완성한 배경을 설명하는 데 더 집중한다. 근현대사의 혼란 속에서 타샤 튜더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조근조근 설명한다.
오래된 집, 손때 묻은 살림살이, 조용하고 느린 삶 속에서 그가 일궈낸 30만평의 정원은 그의 삶 자체를 대변한다. 영화는 골치 아픈 고민을 잠시 멈추고 긴 심호흡을 할 여유를 준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힐링 아닐까?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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