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예산이 늘수록 예술성은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이 들어가면 이전에 흥행 성공한 영화들과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저예산 영화에 집중하기 때문에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영화를 만드는 게 가능합니다.”
미국 영화 제작사 블룸하우스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제이슨 블룸은 7일 부산 해운대그랜드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블룸하우스가 제작한 영화 <할로윈>을 들고 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1995년 할리우드에 프로듀서로 첫 발을 들인 그는 2000년 블룸하우스를 세웠다. 저예산으로 재능있는 감독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게 설립 취지였다. 블룸하우스는 2007년 공포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를 크게 성공시키며 이름을 알렸다. 집 안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 현상을 24시간 내내 카메라로 담는다는 설정의 초저예산 영화로, 별다른 분장이나 컴퓨터그래픽(CG) 없이 상상력만으로 공포를 극대화하는 기법을 썼다. 1만5000달러 제작비로 1억9000만달러 넘는 돈을 벌어들였고, 이후 2015년 개봉한 5편까지 이어지는 시리즈 영화가 됐다.
블룸하우스는 이어 <더 퍼지> <인시디어스> 등 공포영화 시리즈를 잇따라 성공시키며, 결과적으로 4000만달러 안되는 예산으로 12억달러 넘는 수익을 올리는 놀랄 만한 성과를 냈다. ‘공포영화의 명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블룸하우스는 이후에도 <23 아이덴티티> <겟아웃> <해피 데스데이> 등 공포영화 히트작들을 꾸준히 내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젊고 가장 많은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는 슈퍼히어로 영화 아니면 저예산 공포영화예요. 제가 공포영화를 집중적으로 제작하는 것도 하고 싶은 얘기를 최대한 젊고 많은 관객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블룸하우스 대표인 제이슨 블룸. 제이슨 블룸 트위터.
블룸하우스 공포영화들은 최근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3 아이덴티티> <겟아웃> <해피 데스데이>는 미국 다음으로 한국에서 크게 흥행했어요.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우리가 제작한 <위플래쉬>는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크게 흥행했고요. 대스타가 없어도 우리 영화를 사랑해주시는 한국 관객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는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 나타냈다. “<부산행>을 좋아해요. 미국판 리메이크 생각도 해봤는데, 원작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 포기했죠. 한국 배우 중에선 마동석을 좋아합니다. 블룸하우스와 잘 어울리는 배우죠. 한국의 드웨인 존슨이랄까요.”
오는 31일 국내 개봉하는 블룸하우스의 최신작 <할로윈> 장면. 블룸하우스 제공
블룸하우스는 2015년 국내 영화 투자·배급사 쇼박스와 제휴를 맺고 영화를 공동 제작하기로 했다가 흐지부지된 바 있다. 그는 “블룸하우스 전략을 외국 현지영화와 결합하면 어떤 영화가 탄생할지 궁금하다. 한국 영화사와 합작하는 계획을 지금도 추진중이다. 어느 정도 가시화되면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인 뒤 오는 31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할로윈>은 공포영화의 고전이 된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1978)의 정통 후속편을 자처하는 영화다. 1편에 등장했던 살인마 마이클 마이어스가 40년 만에 다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제이슨 블룸은 “1편 이후 이미 9편의 속편 영화가 나왔지만, 우리만의 독특한 시선과 시스템으로 속편을 만들고자 했다. 상업적 흥행뿐 아니라 비평적 성공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할로윈>은 사회·정치적 메시지도 갖고 있어요. 또 강한 여성 캐릭터가 악당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지금 이 시대에 특히 의미있는 영화죠.” 그는 개인적으로 가장 공포를 느끼는 대상을 묻는 질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뼈있는 농담으로 응수하기도 했다.
블룸하우스의 이름을 알린 공포영화 <파라노말 액티비티> 장면. 블룸하우스 제공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고 묻자 그는 “모든 게 감독에서 출발한다”고 답했다. “영화제도 많이 가고 영화를 많이 보면서 눈에 띄는 감독을 만나요. 우리 대표작들을 소개하며 같이 작업하자고 제안하죠.” 그는 “<겟아웃>의 조던 필 감독처럼 공포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 같은 감독에게도 제안해 공포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에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은 누굴까? “요즘은 알렉산더 페인 감독과 여러 차례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폴 토머스 앤더슨입니다. 같이 공포영화를 만드는 게 꿈인데, 저한테 연락을 안 하네요. 하하하~”
부산/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