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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탈북소녀 송이와의 동행…마음벽 허무는 ‘작은 통일’ 경험했죠”

등록 2018-10-17 19:08수정 2018-10-17 22:49

‘폴란드로 간 아이들’ 추상미 감독

3년 넘도록 산후우울증 겪다가
‘북한 꽃제비’ 영상에 눈물 왈칵

폴란드 보내진 한국전쟁 고아들
영화화 위한 취재 여정 다큐로

탈북배우-폴란드 선생님 교감서
국경·인종 초월한 연민·연대 느껴
“개인 삶에 얽힌 분단·전쟁 상처
나아가 통일 성찰 계기됐으면…”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한 추상미 감독. 커넥트픽쳐스 제공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한 추상미 감독. 커넥트픽쳐스 제공
“사실 배우나 감독이나 본질은 같아요. 온 마음을 다해 임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요. 하지만 지금은 ‘배우’라는 수식어보다 ‘감독’이라는 수식어에 더 희열과 감사를 느껴요.”

한국전쟁 당시 폴란드로 보내진 한국전쟁 고아들의 사연을 쫓는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31일 개봉)을 연출한 ‘감독 추상미’는 유려한 답변을 줄줄 쏟아냈다. “심각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고백이 무색하게 열정과 욕심이 넘쳐 보였다. 단편 <분장실>(2010)과 <영향 아래의 여자>(2013)로 이미 ‘감독 신고식’을 치렀지만, 장편으로는 첫 작품이라 긴장도 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감독·출연·내레이터로 1인3역을 해냈다.

“한 3년 넘게 산후 우울증을 겪었어요. 아이에 대한 과도한 애착과 아이로부터 분리되고 싶은 욕망이 교차하는 불안증으로 악몽을 꾸는 날이 많았죠. 그러다 우연히 방송 다큐에 나온 북한 꽃제비 영상을 보게 됐어요. 앙상한 얼굴의 그 꽃제비가 우리 지명이(아들)랑 겹쳐지면서 눈물이 터지더라고요. 모성이 무한 확장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달까?”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 커넥트픽처스 제공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 커넥트픽처스 제공
그렇게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추상미는 운명처럼 ‘폴란드로 간 북한 아이들’ 이야기와 만났다고 했다. “대학 후배가 일하는 출판사에 갔다가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한국전쟁 고아에 관한 믿기지 않는 실화를 접하게 됐어요. 폴란드에서 고아들을 돌봤던 선생님에 관한 폴란드 국영방송 다큐, 이를 소재로 한 폴란드 소설 <천사의 날개>, 각종 논문 등을 읽게 됐죠. 눈이 확 밝아지는 느낌이 들면서 ‘모성-꽃제비-북한 고아’라는 키워드가 하나로 연결이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기나긴 자료수집과 역사 공부가 시작됐다. 1951년 북한은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고아들을 ‘형제의 나라’인 공산권 국가로 보내 돌봄을 요청했다. 그렇게 까까머리 아이들은 폴란드 작은 마을 프와코비체로 보내졌고, 양육원 선생님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8년 후인 1959년, 북한은 국가재건사업인 ‘천리마 운동’을 본격화하며 노동력을 수급하기 위해 폴란드로 보냈던 아이들 전원을 송환한다.

“그렇게 헤어진 지 60년이 지났는데 자료 화면 속 선생님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거예요. 정말 이상하잖아요? 대체 교사들과 아이들 사이에 얼마나 깊은 유대관계가 있길래…. 고령의 선생님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직접 폴란드에 가봐야겠더라고요.” 이 소재로 장편 극영화 <그루터기>(가제)를 만들기로 결심한 추상미는 탈북청소년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열었고, 그 과정에서 배우를 꿈꾸는 탈북여성 이송을 만났다. 폴란드에 송이와 동행하면서 극 영화 사전취재를 위한 여정이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로 탄생하게 됐다.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 커넥트픽처스 제공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 커넥트픽처스 제공
<폴란드…>의 또 다른 주인공인 송이 이야기가 나오자 추상미의 얼굴에 엄마 미소가 번졌다. “오디션에 참여했을 때부터 송이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북한에서의 기억을 깡그리 부정했어요. 말끝마다 ‘전 북한 생각 하나도 안 나요’라면서. 폴란드에 가서도 쉬이 마음을 열지 않더라고요. 그러던 아이가 폴란드 양육원 선생님이 ‘그때 그 아이들과 똑같다’며 안아주니 눈물을 터뜨리며 마음의 벽을 허물더군요. 말로 다 못 할 감동이었어요.”

추상미는 송이와 폴란드 선생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개인의 삶 속에 얽힌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고아들에게 자신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게 했어요.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홀로코스트 등 엄청난 상처를 겪은 선생님들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아이들에게 연민과 사랑, 연대의 감정을 느꼈던 거죠.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을 잊지 못하는 거고요. 개인의 상처와 역사의 상처가 만나는 지점에서 이 영화가 탄생한 겁니다.”

영화를 본 뒤 드는 의문 한 가지. 북으로 송환된 아이들은 결국 어떻게 됐을까? “2000년대 초반 북한 초청으로 가서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온 여교사 한 분이 계세요. 북한 정부와의 관계 탓인지 인터뷰를 거절해 아쉬웠어요. 제가 듣기론 자라서 대사가 되고, 교수가 돼서 폴란드를 다시 찾은 아이들도 있었대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탈북민이라고 밝힌 한 관객은 북에서 영어 선생님이 폴란드 고아 출신이었다고 해요. 그분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많이 울었어요.”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 커넥트픽처스 제공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 커넥트픽처스 제공
남북 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던 지난 정권 동안 영화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까 전전긍긍했다는 추상미. 거짓말처럼 불어온 ‘훈풍’에 기적을 만난 듯했지만, 개봉을 앞두고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프레임 안에 영화를 가두려는 시선이 있을까 우려도 된단다. “저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과 함께 분단과 전쟁의 상처, 그리고 (폴란드 선생님들이 그랬듯) 그 상처를 선하게 사용하는 방법, 나아가 통일에 대해 성찰하고 싶어요. 송이와의 여정에서 이미 전 작은 통일을 경험했어요. 이런 친구들을 통해 우린 지금 통일을 연습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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