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할리우드를 미치게 한 ‘아시아판 신데렐라 로맨스’가 한국시장도 접수할 수 있을까?
“빨리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국내 관객들의 자발적 요청에 힘입어 오는 25일 개봉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미국에서 ‘올해의 영화’로 꼽혀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블랙팬서> 등 프렌차이즈를 제외한 단독영화로는 올해 북미에서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킨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소 진부한 구성과 전개에 막장 드라마 요소가 난무하지만, 화려한 볼거리와 공감 백배를 외치게 하는 가족 이야기로 무장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관람 포인트를 짚어본다.
■ ①동양인은 안 된다는 편견을 버려…주연으로 ‘우뚝’ 무려 25년 만이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제작한 영화의 출연진이 100% 아시아인으로 구성된 ‘이례적인 사건’ 말이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중국계 이민자 이야기를 담은 <조이 럭 클럽>(1993) 이후처음으로 영화 전면에 아시아계 배우들을 내세웠다. 이 영화는 한국계 배우 존조가 주연한 <서치>와 함께 ‘아시안 어거스트’(아시아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였던 2018년 8월)를 견인하며 제작비의 7배 수익을 벌어들였다. 미국 주류 언론은 “<크레이지…>이 <블랙팬서>, <겟아웃>과 함께 ‘주인공이 백인이 아니면 흥행하지 못한다’는 할리우드의 편견을 무너뜨리고 아시안 파워를 증명했다”고 보도했다.
영화의 만듦새를 논하기에 앞서 <크레이지…>을 둘러싼 할리우드의 환호는 한국 흥행에도 분명 청신호다. 더구나 북미보다 앞서 개봉한 <서치>가 290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한 터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중국 배우 양자경 뿐 아니라 아콰피나, 켄 정 등 한국계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것도 관심 요소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 ②낯익은 로코 공식과 막장요소…한국 드라마 견주면 약과 <크레이지…>의 줄거리는 낯익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답습한다. 중국계 미국인이자 뉴욕대 경제학 교수인 레이첼 추(콘스탄스 우)는 평범해 보이는 닉 영(헨리 골딩)과 연애 중이다. 어느 날 닉이 절친 결혼식에 참석할 겸 자신의 가족을 만날 겸 싱가포르행에 가자고 하고 레이첼은 흔쾌히 동행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닉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자 모두가 선망하는 1위 신랑감이었던 것. 레이첼은 싱가포르 사교계의 온갖 질투를 받고, 닉의 어머니 엘레노어(양자경)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평범한 여자가 왕자님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 중 고전이다. 여기에 부모의 반대, 주변의 질투, 출생의 비밀 등 ‘3종 세트’는 오랜 클리셰다. 심지어 ‘김치 싸다구’가 작렬하는 막장드라마에 익숙한 한국 관객에게, 침대에 배를 가른 물고기를 널어두고, 꽃뱀이라는 낙서를 해 놓는 정도의 시기질투는 애교에 불과하다. <올가미>로 대변되는 한국 시어머니 훼방에 견주면 엘레노어의 예비 며느리 뒷조사와 말로 기죽이는 우아한 멸시 역시 애들 장난으로 보인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 ③동서양 가족문화의 차이와 동양인 차별에 대한 조소 하지만 <크레이지…>은 진부한 설정과 전개를 상쇄하고도 남을 여러 무기를 장착했다. 영화는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는 지점을 기존의 ‘미국적 시선’이 아닌 ‘동양적 시선’으로 그려낸다. 영화 속 레이첼은 중국계지만 사실상 미국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란 뉴요커다. 엘레노어가 레이첼을 마뜩잖아하는 건 미혼모 가정이자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는 점도 있지만, 가족보단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구속보단 자유에 무게를 두는 관계에 익숙한 레이첼의 사고방식이 동양식 가족주의와 충돌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거대 사업체의 후계자가 될 닉에겐 집안일을 돌보고 시할머니 등 어른을 봉양할 내조의 여왕이 필요하건만, 레이첼은 자수성가해 쟁취한 교수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는 커리어우먼이니까.
또한 이 영화에는 동양인을 차별하는 미국에 대한 조소도 언뜻언뜻 엿보인다. ‘잠에 빠진 중국을 깨우지 마라. 중국이 깨어나는 순간 온 세상을 뒤흔들 테니’라는 나폴레옹의 말을 인용한 도입부를 시작으로, 젊은 엘레노어를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던 미국 호텔리어가 호텔이 엘레노어 가문에 팔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망해 하는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식이다.
■ ④‘명품 싹쓸이 중국인’ 이미지 과장한 휘황찬란 볼거리 ‘크레이지 리치’라는 낚시성 제목이 상징하듯 영화는 시종일관 닉 영 집안의 상상초월 재력을 보여준다. ‘미국 여행을 와 명품을 싹쓸이해가는 중국인’ 이미지를 극단적인 과장을 통해 풀어내는 셈이다.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화물선 위에서 벌어지는 총각파티, 닉의 친구인 콜린의 4천만불짜리 결혼식, 총을 든 경비원이 정문을 지키는 닉 영 가문의 거대한 저택, 원가 12억짜리 귀걸이 등 미친 갑부들의 돈 자랑도 빼놓을 수 없는 눈요기거리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