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창궐> 속 야귀들의 모습. 뉴(NEW) 제공
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창궐>의 또 다른 주인공은 ‘야귀’다. ‘밤에 창궐하는 귀신’이라는 뜻의 ‘야귀’는 한 번 물리면 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괴성을 지르며 배고픔을 참지 못해 가족이든 이웃이든 마구 습격한다. 영화는 과연 ‘헬조선’에서 고통을 참지 못해 ‘야귀’로 변한 백성이 진짜 야귀인지, 아니면 나라의 안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왕좌에만 골몰한 위정자들이 진짜 야귀인지 묻는다. 그래서 <창궐>의 엔딩크레디트에는 장동건·현빈 등 주연 배우 외에 ‘야귀’ 역할을 한 배우 59명의 프로필 사진과 이름이 빼곡히 등장한다. 관객들이 영화가 다 끝나도 쉬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영화 <창궐> 속 ‘야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야귀 연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디렉팅한 일명 ‘야귀액팅컴포저’ 조한준을 지난 26일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만났다.
95년생. 만 나이로 스물셋이다. 총 제작비 170억원의 대작 속 ‘야귀’가 이렇게 앳된 청년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아 여러 번 나이를 되물었다. “하하하. <창궐> 김성훈 감독님도 처음엔 제 나이를 모르셨어요. 실컷 촬영하다 제가 다른 배우에게 ‘형’, ‘누나’라고 부르는 걸 보시곤 깜짝 놀라셨으니까요.”
아니, 그럼 조한준 안무감독은 언제부터 영화판에 뛰어들었을까? “사실 전 원래 배우예요. 중3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동국대 14학번으로 연기를 전공했어요. 뮤지컬, 연극, 드라마, 영화 등 가리지 않고 작업했는데, 어릴 때부터 ‘몸 연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현대무용도 3년 정도 배웠고요.” 그러다 영화 <혹성탈출>(2011)에서 유인원 ‘시저’를 연기한 배우 앤디 서키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걸 인간이 연기 했다고?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 심장이 뛰더라고요. 내가 이 분야를 개척해보자 싶었어요.”
영화 <창궐>에서 야귀(좀비) 안무 디렉터를 맡은 조한준 감독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그는 게임 <세븐 나이츠>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등의 모션 캡처에 참여를 했고,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에서 좀비 역할을, 드라마 <손 the guest>에서 귀신 들린 구마 역할로 출연했다. 컨셉부터 안무까지 전체를 다 관장한 작품은 <창궐>이 처음이다.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야귀 전문 배우만 59명, 보조출연자까지 하면 300명 정도를 제가 다 담당해야 했어요. 59명은 한 석 달 동안 합숙을 하다시피 하면서 교육했죠. 물론 저도 주요한 장면에 직접 출연도 했고요.” <부산행> 등 좀비물이 성공한 덕분에 야귀 배우 오디션에는 1000명 가까운 지원자가 몰렸단다.
<창궐> 속 야귀는 다른 좀비들과는 어떻게 다를까? 조한준 감독은 “야귀의 내적 갈등”이라고 했다. “<부산행>이 관절을 꺾는 ‘동작’에 집중했다면, <창궐> 속 야귀는 ‘연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물렸을 때 야귀로 변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가족이나 이웃을 물지 않기 위해 애쓰는 야귀의 내적 갈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감정이 실린 디테일’이 중요했단다. “발열-기침-간지러움-경련-꺾임-뒤틀림-구토-야귀 전이로 컨셉을 잡았어요. <창궐>은 의상이 한복이다 보니 관절 꺾임이 잘 드러나지 않아요. 그래서 사족(네 발)으로 기어 다니는 모습을 상상했죠. 무엇보다 소리에서 차이가 커요. 날숨이 아니라 들숨으로 소리를 내도록 했는데, 코로 숨을 들이마시며 소리를 내면 매우 기괴한 신음소리를 낼 수 있거든요.” 그의 ‘야귀 소리’ 시범에 대낮에도 소름이 끼쳤다.
영화 <창궐> 속 야귀들의 모습. 뉴(NEW) 제공
특수분장도 꽤 주요했다. 좀비 변화의 단계별로 마스크와 백탁 렌즈, 마우스피스 같은 것들이 필요했다. “특수분장팀에서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배우들 10여명의 본을 떴어요. 한쪽이 함몰된 야귀, 수포가 올라온 야귀, 얼굴에 핏줄이 선 야귀 등등…. 보통 한 명 분장에 3시간이 걸리는데, 동시다발적으로 한다 해도 60명을 한꺼번에 해야 하니 시간도 엄청나게 걸리죠. 초반엔 서로의 얼굴을 보고 무서워서 비명을 지르곤 했어요. 하하하.” 놀라운 것은 영화 속 김의성·서지혜 등 주요 배우들의 신박한 관절꺾기 역시 씨지(CG) 하나 없는 조한준 감독의 손길로 탄생한 장면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범람한 야귀 떼가 인정전으로 몰려들고, 인정전이 화마에 휩싸이는 스펙타클한 신이다. “6개월이나 촬영을 하다보니 어느 땐 추워도 옷도 못 걸치고, 입가의 피 분장이 얼까 봐 서로 호호 불어주며 견뎠어요. 어느 순간 야귀 분장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애처로워 보이더라니까요. 하하하.”
원래부터 좀비 전문 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기에 ‘얼굴 없는 배우’로서의 설움도 있을 터.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전 아직 어리니까 배우 조한준과 좀비·모션캡쳐 전문가 조한준, 두 가지 모두 포기하지는 않을 거예요. 특수 연기 분야의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으니…. 제가 한국의 앤디 서키스로 불리는 것도 멋지지 않을까요?”
그는 앞으로 관객과 더 자주 만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개봉할 영화 <미스터 주>(가제)에서는 말하는 판다 ‘밍밍’ 역할로 열연했고, 폐업 직전의 동물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해치지 않아>에서는 무려 ‘사자’ 역할로 캐스팅된 상태란다. 아무리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대도 특수분장도, 가면도 뚫을 만큼 독보적인 그의 존재감을 관객도 결국 간파하지 않을까?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