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쓰면 그는 그것을 촬영했죠. 마치 부서장같이 그에게 시나리오를 주면 감독은 그걸 받아서 만들러 나갔어요. 시나리오 작가는 그런 감독을 좋아해요.”
이처럼 고분고분하게 작가의 대본을 받아 연출한 감독은 누굴까. 이 코멘트만 보자면 공장처럼 찍어내는 영화의 실력 없는 초짜 감독이 아닐까 싶지만 예술적 인장이 뚜렷한 감독 중 하나인 팀 버튼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 사람은 <빅 피쉬><찰리와 초콜릿 공장><유령신부>등에서 팀 버튼과 호흡을 맞춘 시나리오 작가 존 어거스트다. 그는 팀 버튼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면서도 <미녀 삼총사>시리즈나 <아이언맨>등 할리우드 상업영화 작업도 했다. 어거스트는 최근 출간된 <필름 크래프트>‘시나리오 작가’편에 담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화의 장인’을 의미하는 필름 크래프트 시리즈는 영국의 영화전문 출판사 포컬 프레스가 기획해 2012~2013년에 걸쳐 출간된 인터뷰집이다. 한국에서는 커뮤니케이션북스가 번역해 7권을 한 세트로 묶어 출간했다. 시나리오 작가 편 외에 영화감독, 촬영감독, 프로듀서, 프로덕션 디자이너, 에디터, 의상 디자이너 편으로 나눠져있다. 각권의 인터뷰 진행자들은 <버라이어티> <스크린 인터내셔널> 등에서 활동한 영미권 영화 평론가들이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아우르며 각권마다 15~20명씩 선정된 대가들 중 한국 이름도 두명이 올랐다. 영화감독 편에 박찬욱, 시나리오 작가 편에 이창동의 인터뷰가 담겼다. 이창동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편에 들어간 건 그가 작품마다 시나리오 작업을 직접 했을 뿐 아니라 <시>가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타는 등 각본 작업에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통의 영화팬이라면 영화감독 편에 먼저 손길이 가지만 사실 더 흥미로운 건 감독만큼 알려지지 않은 직종의 작업들이다. “우리가 정말 힘들게 삭제하기로 결정한 특별히 기억나는 신이 있습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오스카 쉰들러가 그의 공장에서 누군가와 전화하고 있을 때, 유대인들이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동안 저 멀리서 소리를 내며 기차가 들어오는 장면이었습니다. 기차가 멈추고, 사람들은 기찻길로 모여들고, 기차 차량의 문이 열리는 순간, 그 안에는 얼어 죽은 수많은 유대인들이 쌓여 있었죠. 그 장면은 너무나 무거운 신이었기에 이스라엘풍의 음악을 깔아 보려 했지만, 그건 너무 과한 설정이 되어 버렸어요. 그것이 실패임을 직감했죠.“ <레이더스>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에서 스필버그와 함께 작업한 에디터 마이클 칸의 회고는 편집작업(에디팅)이 영화의 균형점 잡기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드러낸다. 각각의 인터뷰에는 주요 작품들의 스틸 컷 뿐 아니라 작가 노트와 감독의 스토리 보드, 화면 밖 촬영 현장의 컬러 사진들이 빼곡하게 담겨져 있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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