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잡는다.”
매년 도로에서 발생하는 뺑소니 사고는 약 7000~8000여건. 한국의 뺑소니 검거율이 100%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늘어난 시시티브이(CCTV)와 차량용 블랙박스 등 첨단 장비의 보편화 덕분이다. 하지만 1~2%의 미검거 비율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분투하는 뺑소니 전담반, 즉 ‘뺑반’은 다소 낯설다. 영화 <뺑반>은 각종 기술은 물론 오랜 경험에 바탕을 둔 ‘감’으로 끝까지 범인을 추적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격렬한 추격전과 F1(포뮬러1) 트랙 위에서 펼쳐지는 화끈한 자동차 액션, 여기에 조정석·류준열·공효진·염정아 등 중량급 배우들이 엮어내는 범죄드라마를 얹었다. 과연 <뺑반>이 설 연휴 관객의 마음에 ‘철컥’ 수갑을 채울 수 있을까?
경찰 내사과 소속 엘리트 경위 은시연(공효진)은 선배이자 멘토인 윤과장(염정아)과 함께 F1 레이서 출신 사업가 정재철(조정석)의 뇌물공여 사건을 수사하던 중 강압수사를 벌였다는 누명을 쓰고 뺑반으로 좌천된다. 퀴퀴한 경찰서 지하실 뺑반에선 만삭의 팀장 ‘우계장’(전혜진)과 차에 대한 타고난 감을 지닌 순경 서민재(류준열), 단 두 명이 고군분투 중이다. 시연은 자신이 쫓던 재철이 뺑반에서 수사 중인 미해결 뺑소니 사건의 유력 용의자임을 알게 되고, 재철을 잡기 위해 팀플레이에 나선다. 하지만 통제 불능 재철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며 반격을 가한다.
‘범죄오락액션’을 내세웠지만, 잘 짜인 치밀한 범죄와 수사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은 아니다. 영화 초반, 뺑소니 현장의 스키드 마크와 염분 흔적, 범퍼 조각 등 작은 증거를 통해 퍼즐을 맞추듯 사고 당시를 재구성하는 수사기법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는 서민재의 놀라운 감각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경찰 무전을 따서 먹고 사는 레커차 운전자와 사고현장에서 늘 마주치는 보험사 직원, 구급차 대원 등 뺑반과 공존공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양념거리다. 중반 이후 서민재의 숨겨진 과거와 윤과장의 비밀을 동력으로 플롯을 전개해 나가는데, 관객이 잘 모르는 뺑반의 치밀한 과학수사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편이 더 나았겠다.
대신 영화는 각 캐릭터가 내뿜는 개성에 많은 부분을 기댄다. 덥수룩한 머리에 안경, 오래된 폴더폰을 들고 다니는 어리숙한 서민재는 차에 대한 빼어난 지식과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반전 매력을 뽐낸다. <응답하라 1988>, <택시운전사>, <독전> 등 짧은 경력에 견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류준열은 감정연기, 액션, 카 체이싱까지 소화하며 극을 끌어간다. 불법 레이싱에 빠진 스피드광이자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사이코패스적인 악역 정재철을 연기한 조정석도 빛난다.
전작 <차이나타운>에서 김혜수·김고은을 앞세워 여성 캐릭터의 매력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은 한준희 감독은 이번에도 공효진·염정아·전혜진 등 세 명의 여배우를 포진시켰다. 셋 모두 남자 부하를 거느린 상위 직급으로 설정된 점,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걸크러시를 뽐내는 점 등이 특이하다. 다만, 이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서민재의 조력자 같은 외곽 캐릭터로 후퇴하는 것은 안타깝다.
전남 담양의 미개통 국도와 터널,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 등에서 촬영했다는 자동차 액션은 나름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정재철의 버스터를 비롯한 레이싱카, 순찰차, 레커차 등 총 200여대가 동원됐고, 배우들이 레이싱 장면의 90% 이상을 직접 촬영했다고 한다.
뱀발: ①속편을 암시하는 쿠키영상이 있으니 바로 자리를 뜨지 말 것. ②순마(순찰차), 망원(정보원), 공도(일반 도로 위의 불법 레이스), 양카(양아치+카) 등의 은어를 미리 알아두면 편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