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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개봉 ‘사바하’…오컬트 세계를 헤매는 목사의 질문 “신은 과연 있나”

등록 2019-02-19 14:05수정 2019-02-19 20:03

흥행작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 신작

기독교·불교·무속신앙 아우른 세계관 창조
날선 미장센·정교한 음악은 분위기 살리나
관객 고려한 군더더기 설명이 되레 지루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CJENM)제공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CJENM)제공
544만여명의 관객을 모은 오컬트 영화 <검은 사제들>(2015) 장재현 감독의 신작 <사바하>(오늘 개봉)는 신을 잃어버린 목사가 자신들의 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종교단체의 속살을 파헤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검은 사제들>이 기독교를 중심축으로 두고 악귀를 쫓는 퇴마 사제들이 겪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주요 플롯으로 풀어냈다면, <사바하>는 기독교는 물론 불교, 민속신앙, 밀교 등을 두루 아우르는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해 냈다고 하겠다. 오컬트 장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독창적 해석으로 지극히 주변부에 머물렀던 이 장르를 한국 상업 영화계의 중심으로 끌어낸 장 감독이 이번에도 젊은 관객들의 구미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1999년 강원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검은 염소의 울음소리와 함께 쌍둥이 자매가 태어난다. 동생인 금화(이재인)와 저주받은 ‘그것’이 태어난 뒤 16년 동안 가족들에게는 비극이 끊이지 않는다. 한편 사이비 종교를 파헤친다는 명목으로 종교단체로부터 돈을 뜯어 생계를 유지하는 종교문제연구소의 박 목사(이정재)는 불교와 밀교의 혼종인 수상한 종교단체 사슴동산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영월의 한 터널에서 입에 부적과 팥을 문 채 살해당한 여중생의 시체가 발견되고, 박 목사는 용의자 김철진이 한때 사슴동산에 몸을 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김철진은 신도들이 ‘광목’이라 부르는 의문의 남자 나한(박정민)과 만난 뒤 갑작스레 자살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사슴동산 법당에 숨어들어 숨겨진 경전을 찾아낸 박 목사는 경전을 단서로 사건을 계속 추적하고, 경전을 쓴 풍사 김제석과 그가 창시한 동방교, 그가 적극 후원했던 소년원 출신의 네 소년, 그리고 1999년 태어난 금화가 얽힌 충격적인 비밀에 다가가게 된다.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CJENM)제공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CJENM)제공
장재현 감독은 기독교 신약성서, 불교와 민속신앙의 결합인 사천왕, 밀교의 비밀주의 등을 고루 따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한다. 그 안에는 악의 탄생, 예언, 영생과 구원 등 다양한 종교적 개념들이 풍성하게 녹아든다. 그리고 이 세계관은 결국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영화 속 박 목사는 전작 <검은 사제들> 속 신부 같은 해결사라기보단 관객과 함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헤매는 동참자다.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면 도저히 발생할 수 없을 극단적 악의 비밀과 마주할 때, 관객은 박 목사의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라는 물음에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이 물음은 또한 장재현 감독이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나는 유신론자다. 절대자가 선하다고 믿는데 가끔 세상을 보면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지 않아서 좀 슬프다. 신은 왜 가만히 있을까,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의심하는 유신론자 박 목사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CJENM)제공
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CJENM)제공
낯설지만 선명한 미장센과 잘 세공된 음악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다채로운 탱화가 주는 아이러니한 공포의 미학, 짐승의 비명과 독경 소리가 묘하게 혼재하는 소름 끼치는 배경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다만, 복잡한 종교적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초반의 팽팽한 긴장감이 중반 이후 느슨해지며 다소 지루하다.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노파심이 앞선 결과다. 그저 도구적 역할에 그친 황 반장 역의 정진영, 후반부 갑작스레 반전을 이끄는 유지태 등 소모적 캐릭터도 아쉽기만 하다.

영화는 끝내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의 끝엔 “불합리한 것을 당신이 믿게끔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에게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게 할 수도 있다”는, 종교의 위험성에 관한 볼테르의 명언만이 머리를 맴돌 뿐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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