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봉준호 감독 등 유명 영화인들은 왜 이 문제에 대해 모두 침묵하는 거죠?”
‘멀티플렉스의 횡포’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며 씨제이 씨지브이(CJ CGV)와 메가박스에 보이콧을 선언한 <칠곡가시나들>의 김재환 감독은 지난 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이런 물음으로 시작했다.
“힘없는 저도 피해를 볼 줄 뻔히 알면서 이렇게 나서는데, 정작 힘 있는 분들은 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나요? 박찬욱·봉준호도 연봉 300만원짜리 감독이었던 시절이 있어요. 다른 문제엔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영화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인 스크린 독과점 문제엔 침묵하는 건 비겁한 동조자 노릇 아닌가요?”
방송사 피디로 일하다 영화판에 뛰어들어 <트루맛쇼>(2011)를 시작으로 <엠비(MB)의 추억>(2012), <쿼바디스>(2014) 등 우리 사회의 치부를 까발리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그는 “이전까지는 스크린 독과점이나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문제에 관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엠비의 추억>이나 <쿼바디스> 때도 멀티플렉스는 제 영화를 외면했지만, 상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칠곡가시나들> 사태를 겪으며 제가 침묵을 한다면 정말 아무도 입을 열지 않겠구나 싶더라고요.”
김 감독은 “자해를 하면서까지 멀티플렉스의 뺨 후려치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순제작비와 홍보·마케팅비가 거의 비슷한 <어쩌다, 결혼>이 <칠곡가시나들>에 견줘 20배 가까운 상영관을 배정받은 것은 오직 이 영화가 씨지브이 아트하우스가 투자·배급한 작품이기 때문인 거죠. 돈 되는 영화엔 스크린을 왕창 배정하고, 돈이 안 되는 다큐는 스크린을 안 주면서 이걸 ‘관객의 작품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되죠.”
무엇보다 김 감독을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씨지브이의 ‘이중적 태도’였다. “입장문을 내기 전 씨지브이 대외협력팀으로부터 배급사를 통해 연락이 왔어요. 스크린을 줄 테니 입장문을 내지 말라는 거죠. 충격이었어요. 아마 그동안 저와 비슷한 문제를 제기하려던 사람들도 이런 제안을 받았을지 모르죠. ‘씨지브이가 만든 철옹성 안으로 들어오면 너는 봐주겠다’는 그 제안이 더 모욕적이었어요.” 김 감독은 단칼에 거절했다. “받아들이면 저는 스크린을 배정받고 돈도 벌겠죠. 그런데, 그 스크린을 어디서 빼서 줄까요? 씨제이가 투자배급한 <극한직업>일까요? <사바하>일까요? 아니죠. 결국 <칠곡가시나들>처럼 다른 투자배급사가 만든 작은 영화 몫에서 빼겠죠.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양심을 팔 수는 없었어요.”
스크린 독점에 대한 비판이 일 때마다 늘 자본주의와 시장논리를 내세우는 멀티플렉스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반박했다. “1500만명을 동원한 씨제이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 역시 독립영화에서 출발했어요. 영화계에서 자본주의가 잘 작동하려면 큰 물고기뿐 아니라 작은 물고기, 미생물까지 더불어 살며 다양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하는 사례 아닌가요?”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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