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첫 미니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 왓챠 제공
“영화와 드라마에 근본적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긴 영화라 생각하고 드라마를 연출했죠. 다만 극장에서 못 튼다는 게 이렇게 뼈아픈 건지 미처 생각 못했어요.”
박찬욱 감독은 25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나 첫 드라마 연출 소감을 전했다. 그가 연출한 <리틀 드러머 걸>은 지난해 영국 <비비시>(BBC)와 미국 <에이엠시>(AMC)에서 방송된 데 이어, 오는 29일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왓챠플레이를 통해 감독판이 공개된다. 스파이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의 원작을 바탕 삼아 이스라엘 정보국과 팔레스타인 혁명군 사이의 첩보전을 다룬 6부작 드라마다.
박찬욱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한 미니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의 한 장면. 왓챠 제공
“고등학생 때부터 존 르 카레 소설을 좋아했어요. 특히 냉전시대 동서진영의 첩보전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리틀 드러머 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야기라 별 관심 없었어요. 그런데 아내가 정말 재밌다며 권하더라고요. 다 읽자마자 피디에게 전화해서 이거 한번 알아보자 했죠.”
<리틀 드러머 걸>을 읽고난 이듬해인 2016년 영화 <아가씨>로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 간 박 감독은 그곳에서 원작 판권을 가진 제작자를 만나 함께 작업하기로 했다. 박 감독은 “원작 내용이 워낙 방대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로 만들기로 했다. 실제 촬영 때도 영화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고 말했다.
아쉬움은 작품을 다 만든 뒤에 찾아왔다. “영국 런던영화제에서 방송판 1~2회를 극장에서 트는 걸 봤어요. 극장에서 보니 이렇게 좋은 걸 티브이와 스마트폰으로만 봐야 한다는 게 슬펐어요. 다음에도 이런 시도를 한다면 그때는 극장 상영을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만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자신의 첫 미니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 왓챠 제공
그는 극장 상영의 장점으로 “대형 스크린, 음향, 관객 집중도”를 꼽았다. “극장에서 보면 쾌감이 극대화되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나 봉준호 감독의 <옥자>조차 극장에서 보기 힘들다는 게 아이러니죠. 영화사들은 그만한 예산 투자를 안 하려 하고, 넷플릭스가 그만한 예산 투자를 해서 극장에서 틀 만하게 만들어놓으면 극장들이 안 틀려 하고. 창작자 입장에선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하니 아쉽죠.” <리틀 드러머 걸>의 주인공은 무명 여성배우 찰리(플로렌스 퓨)다. 그는 이스라엘 정보국의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여 마치 연기하듯 팔레스타인 세력 안에 침투한다. 박 감독은 “찰리는 위험에 뛰어들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이다. 숙희(<아가씨>), 태주(<박쥐>), 금자씨(<친절한 금자씨>)도 그랬지만, 유독 찰리는 앞뒤 안 재고 일단 뛰어들고 보는 불같은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첫 미니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을 연출하고 있는 박찬욱 감독. 왓챠 제공
작품 중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영화가 많은 이유를 물었다. “여성이 인류의 절반인데, 여성을 내세운 영화가 적어요. 그래서 이건 훌륭한 시장이다, 생각했죠(웃음). 제가 결혼 생활도 점점 길어지고, 딸 아이도 커가면서 자기 목소리 많이 내고 하니, 그런 데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차기작은 뭘까? “제일 좋은 건 한국영화 하나, 외국어영화 하나 번갈아 하는 건데,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요(웃음). 할리우드 서부극 <브리건즈 오브 래틀버지>는 예산이 많이 드는데 아직 투자 확정이 안됐고요, 한국영화로는 남자 형사와 한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수사물이자 로맨스 영화를 구상 중입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