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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분투할수록 바닥 내몰리는 여성들-일드 ‘절규’

등록 2019-04-06 10:55수정 2019-04-08 15:08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던 30대 중반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밀린 집세 때문에 찾아온 집주인이 최초로 목격한 여성은 이미 숨진 지 반년이 지나 반려동물들에게 뜯어 먹힌 채였다. 담당 형사 아키노 오쿠누키(고니시 마나미)는 전형적인 고독사로 보이는 이 사건에 이상한 위화감을 느낀다. 그리고 11마리에 이르는 고양이들이 배변 훈련조차 받지 못한 흔적이 드러나자, 죽은 여성에 대해 좀 더 조사하기로 한다. 사망자의 이름은 스즈키 요코(오노 마치코), 생명보험 판매원이었다.

지난달 일본 와우와우 채널에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절규>는 한 여인의 고독사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작품이다. 드라마는 담당 형사 아키노의 시점과 자신의 사연을 직접 고백하는 스즈키의 시점을 교차하면서, 보는 이들을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현대 일본의 심각한 사회 병리다. 어두운 비밀을 지닌 여성의 과거를 통해 일본의 그늘을 드러내는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 원작의 <화차>,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백야행> 등의 영향이 느껴진다.

하지만 <절규>는 ‘괴물’이 된 여성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사건 추적자 또한 여성 형사라는 데 결정적 차별점이 있다. 이 드라마가 전면에 내세우는 대표적인 사회문제는 개인과 사회의 연결고리가 끊긴 현실의 극단적 결과인 무연사, 불황으로 인해 급증한 빈민층을 착취하는 빈곤 비즈니스다. 두 문제에 가장 취약한 계층 가운데 하나가 여성 1인 가구이고, 바로 이 점에서 아키노 형사와 스즈키 요코의 기묘한 연대감이 생긴다.

스즈키는 어린 시절 남동생만 편애하는 모친 밑에서 자존감을 상실한 채 자랐고, 부친이 실종된 뒤에는 혼자 살아남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도쿄에 온다. 콜센터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박봉에 적자만 늘어가는 현실에 절망한다. 그녀의 과거를 되짚어가던 아키노는 스즈키가 소위 ‘생명보험 레이디’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대번에 알아챈다. 강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바로 잘리는 자리여도, 어디서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그나마 실적에 따라 최저생계비 이상을 꿈꿀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계약을 권할 가족도, 지인도 없는 스즈키에게는 더 힘겨운 곳이었다.

드라마는 첫 회부터 스즈키가 생존을 위해 분투할수록 바닥으로 내몰리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그리면서, 한편으로는 빈곤 비즈니스 업체 ‘카인드 헬프’ 조직원들과 자꾸만 마주치는 장면을 비추며 그가 곧 이르게 될 미래를 암시한다. 저소득층에게 접근해 생활지원금을 착취하는 빈곤 비즈니스는 현재 일본 사회의 가장 음울한 불황형 범죄다. 특히 이곳에 얽힌 빈곤 여성들은 매춘까지 알선, 강요당하는 등 더 극한의 고통에 시달린다. 극 중에서 카인드 헬프 조직원들은 자신들이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기민’(棄民)들을 구원하는 것이라 합리화한다. <절규>는 말하자면 그 ‘기민 중의 기민’인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져가는 일본 사회의 절망으로 울부짖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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