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돌을 맞은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중 특히 관심을 모으고 있는 두 영화 <삽질>의 김병기 감독과 출연진, <옹알스>의 차인표·전혜림 감독을 영화제 현장에서 만났다.
다큐멘터리 영화 <옹알스> 공동 연출을 맡은 차인표 감독(왼쪽)과 전혜림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배우 차인표가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전혜림 감독과 공동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옹알스>가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이달 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 3일 전주의 한 호텔에서 만난 차 감독은 “처음엔 제작만 하려다 연출까지 맡게 됐다”며 “힘들어서 때려치우고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영화제까지 오게 되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소감을 전했다.
옹알스는 2007년 한국방송 <개그콘서트> 한 꼭지에서 출발한 논버벌(비언어적) 코미디 팀이다. 방송을 벗어나 지난 12년 동안 21개국 46개 도시를 돌며 한국 코미디를 알려왔다. 영화는 리더 조수원이 혈액암으로 투병하는 중에도 미국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도전하는 과정을 1년여에 걸쳐 담아냈다.
10년 전 알게 된 옹알스를 오랜만에 다시 만난 차 감독은 이들이 꿈의 무대에 도전한다는 얘기를 듣고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 “방송에서 밀려난 이들이 외국 길거리 공연에 도전하는 걸 보며 저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제가 1996년 영화를 시작했는데, 몇년 전부터 대본이 안 들어오더라고요. 작은 영화라도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 싶어서 영화사를 직접 차렸어요.”
배우 차인표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 <옹알스>의 한 장면. 리틀빅픽처스 제공
하지만 제작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촬영 초반 감독이 그만두는 바람에 제작을 엎으려고도 했다. “조수원씨가 계속 (눈에) 밟혔어요. 암 환자가 웃을 일이 없는데, 다큐 찍는다 하니 무척 좋아했거든요. 배반할 수 없겠더라고요. 제가 몇년 전 동생을 잃어서 더 그랬는지도 몰라요. 나라도 감독을 맡아 찍어보자 했죠.”
그는 2017년 단편영화 <50>으로 처음 연출을 시작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인터뷰 기사를 보다 ‘왜 영화 연출을 하느냐’는 질문에
‘말런 브랜도 등 선배를 보니 50살 넘으면 일이 줄더라. 나는 영화를 평생 하고 싶어 연출도 하고 출연도 하는 것’이라고 한 대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역량은 없어도 롤모델 삼고 따라가면 좋겠다 싶어 연출에 도전했어요.”
차 감독은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애초 예상과 달라 당황했다고 했다. “옹알스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진출에 이어 코미디로는 최초로 한국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섰으니 ‘도장 깨기’처럼 라스베이거스 진출까지 이뤄내는 걸 경쾌하게 담으려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아프고 빚도 많고 삶을 버거워하는 모습이었어요. 도전을 주저하는 게 답답하고 못마땅한 마음에 내가 멤버들을 다그치기도 했는데, 카메라를 들고 한명 한명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의 진짜 꿈을 이해하게 됐죠.”
차 감독은 “본래 성질이 급했는데 이 영화를 하면서 내 뜻대로 안 돼도 괜찮다는 걸 깨치고, 더불어 살고 더불어 일하는 마음가짐을 배웠다”고 했다. 전혜림 감독 역시 “옹알스가 꿈을 지켜가는 모습을 담으면서 나도 위로받고 내 꿈을 스스로 응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의 민낯을 파헤친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의 김병기 감독(가운데)과 영화에 참여한 김종술(왼쪽)·이철재 시민기자. 이종호 사진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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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 김병기 감독
“기록하지 않으면 책임 물을 수 없다”
감독은 오마이뉴스 기자 출신
‘4대강 독립군’ 나선 김종술
협박 물리치고 기사 수천건 작성
환경운동가 이철재 시민기자
4대강 부역자 정리 ‘백서’ 집필
“찬동인물들 여전히 이익 누려
유지관리비 등 매년 1조원 들어”
4대강 사업의 민낯을 파헤친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고, 기억하지 않으면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책임을 묻지 않으면 제2, 제3의 삽질이 또 벌어질 겁니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입니다.”
지난 4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삽질>의 김병기 감독이 말했다. 일찌감치 온라인 예매표가 매진되면서 화제를 모은 <삽질>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의 민낯을 파헤친 작품이다.
김 감독의 본업은 온라인 매체 <오마이뉴스> 기자다. 대선을 한해 앞둔 2006년 당시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발표했을 때부터 10년 넘게 관련 취재를 했다. “편집국장을 할 때는 직접 취재하기 힘들었지만, 각지에서 활약한 ‘4대강 독립군’ 시민기자 덕에 문제 제기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죠.”
영화에도 출연한 김종술 시민기자는 충남 공주 지역신문의 기자이자 사장이었다. 2008년 4대강 취재를 시작하니 광고 회유와 협박, 폭행 등 압박이 밀려왔다. 결국 신문사 문을 닫은 그는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취재를 이어갔다. “1년에 340일 강에 나가 취재하고, 기사 1600건을 썼어요. 생계 활동을 못 해 빚만 늘었지만, 지역 토호와 관변단체 등의 협박과 거짓말의 기승이 더 큰 원동력이 됐죠.” 그는 금강에서 큰빗이끼벌레를 발견하는 특종을 했고, 녹조 현상과 실지렁이가 득시글거리는 상태도 고발했다.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출신인 이철재 시민기자는 ‘4대강 부역자 명단’을 만들었다. 에스(S)급 10명 등 모두 270명을 추렸다. “4대강을 적극적으로 홍보·왜곡했던 이들이 여전히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습니다. 물러난 사람들은 대학 총장, 석좌교수, 기업인 등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찬동 학자들은 큰 연구용역을 수주해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그는 요즘 4대강 저항운동 백서를 집필 중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김 감독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처벌받은 사람이 없다. 사업 과정에서 조성된 비자금 종착지도 묻혔다. 수사를 멈추고 책임 묻지 않았던 것에 문제 제기하는 고발장 같은 영화가 <삽질>”이라고 말했다. 김종술 기자는 “대다수 사람은 4대강을 다 끝난 얘기로 안다. 하지만 부역자들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고, 유지관리비·이자 등으로 매년 1조원씩 우리 호주머니 돈을 빼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이 4대강을 이슈로 삼으면서 논쟁이 더 첨예해질 거예요. 4대강 독립군과 함께 ‘삽질의 종말’이 올 때까지 역할을 할 겁니다.”(김병기) “이 영화로 이제 또 첫발을 내디뎠어요. 또 다른 영화나 후속 취재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가져야 예전처럼 맑은 강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김종술)
<삽질>은 오는 23일 개막하는 서울환경영화제에서도 특별상영 하고, 올해 하반기에 정식 개봉할 예정이다.
전주/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