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아무도 없는 곳>을 들고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김종관 감독. 정지욱 영화평론가 제공
김종관 감독은 전주국제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2016년 <최악의 하루>, 2017년 <더 테이블>, 2018년 단편 <모르는 여자>에 이어 올해 <아무도 없는 곳>까지 4년 연속 초청됐다. 특히 <아무도 없는 곳>은 영화제가 투자·제작에 참여하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의 결과물이다. 최근 한국 독립영화계에서 독보적 성취로 주목받는 김 감독의 능력을 영화제도 높이 산 것이다.
연우진, 아이유, 김상호, 이주영 등이 출연한 <아무도 없는 곳>은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일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여하느라 바쁜 김 감독을 지난 5일 영화제 현장에서 만났다. 전날 배우들과 늦게까지 가진 술자리의 여파가 남아 있는 듯했지만, 얼굴에선 엷은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김종관 감독의 신작 <아무도 없는 곳>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아무도 없는 곳>은 전작들의 흐름을 이어가며 발전시킨 작품으로, 김 감독의 최고작이라 할 만하다. 은희(한예리)가 하루 동안 길에서 겪은 일을 담은 <최악의 하루>, 어느 카페 테이블에서 이뤄진 네쌍의 대화로만 구성한 <더 테이블>의 형식을 종합해, 이번엔 주인공 창석(연우진)이 며칠 동안 찻집과 길에서 사람들과 하는 대화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특정 공간에서 두 사람의 대화로 이끄는 형식은 적은 회차와 예산으로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장편영화는 보통 40~50회차 정도 찍는데, <더 테이블>은 7회차, <아무도 없는 곳>은 10회차로 촬영을 마쳤죠.”
신작 <아무도 없는 곳>을 들고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김종관 감독. 정지욱 영화평론가 제공
각본도 직접 썼다. 플래시백(회상) 장면 하나 없이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펼치는 이야기의 흡인력이 상당하다. 눈으로 보는 대신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만든다. 그는 “이런 형식으로 만들다 보니 대사 쓰기에 더 노력하게 되더라. 자꾸 써버릇 하니 느는 것 같다”며 웃었다.
김 감독의 직전 작품은 넷플릭스가 지난달 공개한 오리지널 시리즈 <페르소나>다. 감독 4명이 아이유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4편을 찍었는데, 김 감독은 <밤을 걷다> 편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밤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20분짜리 영화는 삶과 죽음,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허문다. “<아무도 없는 곳>은 <밤을 걷다>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영화”라고 그는 설명했다. <아무도 없는 곳>은 늙음·상실·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삶과 죽음, 실제와 허구 사이에서 줄타기한다.
김종관 감독의 신작 <아무도 없는 곳>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아무도 없는 곳> 첫 에피소드에 아이유가 출연한 것도 <밤을 걷다>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밤을 걷다> 작업 당시 시나리오를 보여주니 흔쾌히 수락했어요. 여러 제안이 많을 텐데, 첫 장편으로 저예산 영화를 선택한 게 제겐 큰 선물이었죠. 이런 선택 자체가 연기와 영화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역시 아티스트구나’ 했어요.”
<아무도 없는 곳> 개봉 일정은 아직 미정이다.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김 감독은 올해 하반기에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리메이크 작업에 들어간다. “규모 있는 상업영화는 처음인데, 꼭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했다.
“저예산 영화만 계속 하긴 너무 힘들어요. 상업영화와 저예산 영화를 오가며 자유롭게 하려 합니다. 언젠가 저만의 브랜드를 쌓아서 저예산 영화도 20만~30만 관객을 모으는 시장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주/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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