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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들 어때…너그럽게 품어낸 ‘가족의 조건’

등록 2019-07-23 11:24수정 2019-07-25 18:32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⑫가족의 탄생
감독 김태용(2006년)
동생 형철(엄태웅)에게 누나 미라(문소리)는 엄마이자 친구 같은 존재다. 5년 동안 아무 소식 없던 형철이 어느 날 자신보다 스무살 연상인 여자친구 무신(고두심)과 함께 집에 오자 미라는 당황한다. 어색함 속에서 셋이 함께 밥 먹는 모습.
동생 형철(엄태웅)에게 누나 미라(문소리)는 엄마이자 친구 같은 존재다. 5년 동안 아무 소식 없던 형철이 어느 날 자신보다 스무살 연상인 여자친구 무신(고두심)과 함께 집에 오자 미라는 당황한다. 어색함 속에서 셋이 함께 밥 먹는 모습.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 속 가족의 형상은 부서진 상태였다. 그 중심에는 아버지를 ‘잃은’ 소년들의 고군분투가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다른’ 가족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로 이행하는 대신, 상실감과 향수와 자기연민 속에서 허우적댔다. 영화 속 주인공은 죄다 남자였고, 그들이 놓인 토대 역시 철저히 남성 중심적이었다. 2006년, 우리를 찾아온 <가족의 탄생>은 그런 퇴행적인 경향을 뚫고 나온 희귀한 빛과 같았다.

영화는 모두 세 이야기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누나와 남동생, 그리고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데려온 스무살 연상의 연인이 나오고 2부에서는 엄마의 죽음 뒤 아버지가 다른 동생을 키우게 된 여자가 등장하며 3부에서는 앞선 두 이야기가 젊은 세대의 연애담 안에서 접속한다. 가족 영화를 지탱하는 애증, 배신, 후회, 이별, 죽음의 화두가 어김없이 고개를 들지만, 이 작품의 특별함은 그것이 가부장제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 영화는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다. 여자들이 지켜낸 공동체는 비혈연적이고 그들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대책 없이 모성을 신비화하거나 모계 중심적인 구도를 낭만화하는 건 아니다.

채현(정유미)과 경석(봉태규)은 연인 사이다. 경석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한 채현에게 불만이 많다.
채현(정유미)과 경석(봉태규)은 연인 사이다. 경석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한 채현에게 불만이 많다.
징글징글한 피로 얽혀 원망하고 희생하는 가족 영화 속 단골 주인공은 여기 없다. 혈연이 아닌 마음으로 맺어진 관계를 책임을 다해 돌보며 새로운 가족의 역사를 몸소 일궈내는 여자들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의 시선은 그 시간의 무게와 수많은 내적 갈등을 은폐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매만진다. 가족주의의 위선을 다룬 작품들이 흔히 견지하는 냉소적 어조나 전투적인 태도 대신 이 작품이 취한 온화하고 맑은 화법은 의외의 힘을 발휘한다. 분노에 찬 웅변이 아니라, 투명하고 부드러운 반문이 ‘가족’이라는 협소한 테두리를 너그러운 공동체의 지평으로 확장한 것이다. 당대 한국 영화에 부유하던 비틀린 가족주의의 환상을 <가족의 탄생>은 그렇게 산뜻하게 넘어섰다.

남다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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