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한국영화 100년 한국영화 100선
44)미워도 다시 한번
감독 정소영(1968년)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두 여자’라는 통속적 스토리에 애끊는 모성애를 버무린 ‘미워도 다시 한번’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사정없이 자극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1960년대는 이른바 한국영화사의 황금기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작품이 많이 만들어진 시기다. 그러나 60년대 말 등장한 영화들은 60년대 초의 작품들보다 미학적인 수준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는데, 실망스럽게도 바로 이 시기 작품들이 한국영화사의 침체기라 할 수 있는 70년대를 견인하게 된다. 이 시기 영화계의 퇴행은 박정희 정권이 주도했던 근대화의 모순이 드러나고, 유신정치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정소영 감독의 1968년작 <미워도 다시 한번>은 이런 흐름 가운데 개봉된 작품이다. 관객 약 40만명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흥행사를 다시 쓴 이 영화는 완성도나 주제의식, 스타일상의 특이점보다 산업적 관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당시 관객들이 왜 이 영화에 열광했는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신호(신영균)는 고향에 처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서울에서 만난 혜영(문희)과 연애를 한다. 신호의 아내와 아이들이 갑자기 상경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알게 된 혜영은 배 속의 아이를 혼자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고 서울을 떠난다. 그리고 8년 뒤 신호는 갑작스레 아들 영신(김정훈)을 맡아달라는 혜영의 부탁을 받는다. 그러나 이미 안정되어 있는 신호의 가정에 영신이 들어갈 틈은 없어 보인다. 영신은 다시 혜영에게 돌아가고 부자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사실 이 영화의 서사에서 영신을 누가 기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생모와 생부가 함께 살 수 없어서 아이(이른바 사생아)가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비극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예정된 슬픔에 여성의 순애보와 애끊는 모성애가 곁들여진 이 영화는 당시 관객들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했다. 또한 전후 복구 과정에서 생긴 경제적 불균형과 박탈감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까지 대중을 이 멜로드라마로 계속 이끌었다. 극장 안에서는 서민들의 절망감도 한줄기 눈물 속에 잠시 사라졌다. 최루성 영화를 보면서 현실의 고통을 눈물로 배설해냈던 일제강점기의 풍경이 재현된 것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의 성공은 속편(1969)과 3편(1970), 대완결편(1971)으로 이어지며 1970년대 깊숙이 침전한다. 돌아보면 곧 다가올 칠흑 같은 시대의 복선 같은 영화였다.
윤성은/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