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인 앤 글로리>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새달 9일(현지시각)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경쟁작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영화상, 작품상, 감독상 등을 놓고 <기생충>과 경합을 벌이는 영화들이 잇따라 국내 관객과 만난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영화는 새달 5일 개봉하는 <페인 앤 글로리>다. 스페인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으로, 국제영화상 부문에서 <기생충>과 경쟁한다. 봉 감독이 지난 5일(현지시각)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을 때 “오늘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리고 멋진 세계 영화감독님들과 함께 후보에 오를 수 있어 영광”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존경을 표하는 감독이다.
욕망, 광기, 집착 등 인간 본능에 관한 주제를 다루며 찬사를 받아온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번에 처음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냈다. 심신이 약해진 탓에 작품활동을 중단한 영화감독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지나온 삶과 사랑을 돌아보고 창작자로서 고뇌하는 모습을 그렸다. 실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허리 수술 이후 다시는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창작에 대한 열망을 느꼈고, 이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이 영화는 제가 70년 동안 살아온 결과물”이라고 그는 말했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장편 데뷔작 <정열의 미로>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알모도바르와 함께한 건 이번이 아홉번째다. 그는 이 영화로 지난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당시 <페인 앤 글로리>는 여러 나라 평론가 10명이 참여해 칸영화제 경쟁작 21편에 점수를 매기는 ‘스크린 데일리’ 평가표에서 <기생충>(3.5점) 다음으로 높은 점수(3.3점)를 받았다. 역시 알모도바르와 여러 작품을 함께 한 스페인 대표 여성 배우 페넬로페 크루스는 주인공의 어머니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 <조조 래빗>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기생충>과 작품상, 편집상, 미술상 부문에서 경합하는 <조조 래빗>도 새달 5일 개봉한다. 마블 히어로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를 연출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신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을 배경으로 한 블랙코미디다. 어릴 적 인상 깊게 읽었던 크리스틴 뢰넨스의 소설 <갇힌 하늘>을 유쾌한 전쟁 이야기로 각색한 와이티티 감독은 “끔찍한 2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새롭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엄마(스칼릿 조핸슨)와 단둘이 사는 10살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히틀러 소년단에 입단하지만 ‘겁쟁이 토끼’라고 놀림만 받는다. 상심한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는 존재는 상상 속 친구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다. 어느 날 조조는 집에 몰래 숨어 있던 유대인 소녀 엘사(토마신 매켄지)를 발견하고 신고하려 한다. 하지만 여러 일을 겪으면서 조조의 마음은 혼란스러워진다.
<조조 래빗>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색감과 미장센을 보여준다. 소년의 눈에 비친 비현실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유쾌하게 풍자한 나치 캐릭터들이 웃음을 안긴다. 하지만 단순히 웃음으로 끝나는 영화는 아니다. 와이티티 감독은 유머를 통해 무서운 이념이 얼마나 쉽게 퍼질 수 있는지에 대한 섬뜩한 경고를 전한다.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고, 전미비평가협회 선정 ‘올해의 영화 톱 10’에 들었다.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스틸컷. 알토미디어 제공
다음으로 관객을 만날 영화는 작품상을 놓고 <기생충>과 다투는 <작은 아씨들>(2월12일 개봉)이다. 올컷의 1860년대 동명 소설 원작의 영화로, <프란시스 하> <레이디 버드> 등으로 주목받은 배우 출신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이 연출했다. 세어셔 로넌, 에마 왓슨, 플로렌스 퓨, 티모테 샬라메 등 젊은 배우들과 메릴 스트립, 로라 던 등 관록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조화가 기대를 모은다.
국제영화상 후보에 오른 <문신을 한 신부님>(2월13일 개봉)도 같은 주 극장가에 걸린다. 폴란드 출신 얀 코마사 감독의 작품으로, 소년원에서 가석방된 스무살 청년이 훔친 사제복을 입고 신부 행세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실화 소재 영화다.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치유의 과정을 그려내 종교를 넘어 보편적 공감을 안긴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미술상 부문에서 <기생충>과 맞붙는 샘 멘디스 감독의 <1917>은 새달 19일 개봉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아군을 구하러 간 두 영국 병사의 이야기로,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많은 평론가들이 올해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품으로 꼽는다. 최근 미국 엔터테인먼트 매체 <벌처>는 아카데미 작품상 레이스 판도가 <아이리시맨>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경합에서 <기생충>과 <1917>의 대결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