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젯> 스틸컷.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2005년 개봉한 <용서받지 못한 자>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영화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만든 졸업작품이 평단의 극찬 속에 정식 개봉까지 했을 뿐 아니라, 이후 한국 영화의 중추로 성장한 배우 하정우와 윤종빈 감독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 촬영 당시 동시녹음 기사로 참여한 학생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오는 5일 개봉하는 영화 <클로젯>의 김광빈 감독이다.
<클로젯>은 하정우·김남길 주연의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로, 김광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게 된 데는 <용서받지 못한 자> 시절의 인연이 작용했다. 하정우는 당시 영화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자신의 차로 김광빈 감독을 데려다주곤 했다. 학교 선후배인 둘은 “언젠가 우리 둘이 같이 영화를 찍자”고 약속했다. 영화 촬영 직후 입대한 김광빈 감독은 내무반 텔레비전으로 스타 배우가 된 하정우를 보면서 ‘그 약속은 이제 나만의 꿈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 <클로젯> 스틸컷.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지만 하정우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 김광빈 감독이 <모던 패밀리>(2011), <자물쇠 따는 방법>(2016) 등 단편영화로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걸 지켜본 하정우는 김광빈 감독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시나리오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서양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인 벽장에다 한국적 정서를 결합한 이야기에 신선함을 느낀 하정우는 출연은 물론 기획·제작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여기에 윤종빈 감독의 영화 제작사 월광까지 의기투합하면서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치게 된 것이다.
<클로젯>은 오래된 홈비디오 화면으로 시작한다. 집에서 굿판을 벌이던 무당이 뭔가에 홀린 듯 벽장 앞으로 이끌려 갔다가 큰일을 당하는 장면이 오싹함과 호기심을 동시에 부른다. 이후부턴 상원(하정우)과 그의 딸 이나(허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고 딸과의 관계까지 악화하자 상원은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분위기를 바꿔보려 한다. 상원은 이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하지만 이나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나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며 한층 밝아진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평온도 잠시, 이나 방의 벽장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오고, 이나도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이나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영화 <클로젯> 스틸컷.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나를 찾기 위해 애쓰는 상원에게 경훈(김남길)이 찾아온다. 그는 무속신앙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최첨단 기기를 이용해 악귀를 쫓는 퇴마사다. 경훈은 이나 말고도 실종된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전하며 상원의 집을 구석구석 살핀다. 경훈이 의심스러운 지점으로 가리킨 곳은 바로 이나 방의 벽장. 상원과 경훈은 이나를 되찾기 위해 위험천만한 의식을 벌인다.
영화의 아이디어는 김광빈 감독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다. “살짝 열린 벽장 틈 사이로 누군가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는 김 감독은 벽장, 인형 등 서양 공포영화의 요소에다 굿, 부적 등 우리 무속신앙의 요소를 결합하고, 여기에 가족 이야기를 더했다. 단순히 무서운 영화로만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영화는 장르물로서의 재미와 나름의 의미를 다 잡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영화 <클로젯> 스틸컷.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실제로 ‘절친’이라는 하정우와 김남길의 호흡도 좋다. 능청스러운 연기에 강점을 보였던 하정우는 이번엔 진중하고 묵직한 연기를 선보인다. 반대로 김남길은 초반에 가볍고 코믹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이톤의 목소리로 능청스러운 대사를 뱉어내던 김남길은 중반 이후 구마 의식에 진지하게 몰입하면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극과 극의 캐릭터를 오가는 김남길의 호연이 몰입감을 높인다.
아역 배우 허율은 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나 역을 따냈다. 드라마 <마더>로 최연소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은 허율은 천진한 웃음을 보이다가도 차갑고 섬뜩한 얼굴을 드러내는 등 섬세한 감정 연기를 소화했다. 하정우는 허율에 대해 “뛰어난 집중력과 다양한 표현력이 놀랍다. 좋은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느낌을 갖췄다”고 칭찬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