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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 독립영화에 ‘작은 빛’ 비춘다

등록 2020-02-05 17:07수정 2020-02-06 02:33

【영화 ‘작은 빛’ 조민재 감독과 주연배우 곽진무】

20대 선반공의 퇴직금이 수작으로
영화 독학한 조 감독의 자전적 데뷔작
실제 가족 관계·사는 집 그대로 투영
“올해의 독립영화” 극찬 받아

7년 전에 만난 감독의 페르소나
토론 모임 유일한 배우였던 곽진무
‘아버지의 부재’라는 공감대 지녀
조 감독 분신과 같은 ‘진무’역 소화

곽 배우 “공감되고 깊었던 시나리오
주인공 심정 담아 집요하게 연기”
조 감독 “아버지에 대한 묵은 짐
엔딩 찍고야 털어낼 수 있었어요”
영화 <작은 빛>의 조민재 감독(오른쪽)과 주연배우 곽진무가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영화 <작은 빛>의 조민재 감독(오른쪽)과 주연배우 곽진무가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영화를 좋아하던 20대 노동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털어 만든 작은 영화가 한국 독립영화계에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지난달 23일 개봉해 벌써부터 “올해의 독립영화”라는 평단의 극찬을 받는 <작은 빛>이다. <작은 빛>의 조민재 감독과 주연배우 곽진무를 최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만났다. 각각 1993년생과 1981년생으로 띠동갑인 둘은 7년 전 영화 토론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축복 같은 이 영화는 어쩌면 그때 잉태되었는지도 모른다.

조 감독은 어릴 때부터 영화 보는 걸 좋아했다. 야간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장에서 선반공으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영화를 독학하고 영화 모임에도 나갔다. 7년 넘게 해온 일을 멈추고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결심이 선 것도 그래서다. 자신이 잘 아는 노동 관련 영화를 만들기로 하고 글을 써나갔다. 글이 잘 안 풀리던 어느 날 바람도 쐴 겸 고향인 제주도에 갔다. 사촌 형이 “온 김에 아버지 산소에 들르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그리움보다 미움이었다. 8년 만에 찾아간 무덤 앞에서 문득 ‘내가 아버지를 왜 이렇게까지 미워했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내면에 고여있던 기억에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그 파동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시네마달 제공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시네마달 제공
서울로 올라온 그는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을 찾아갔다. 어머니·형·누나를 찾아가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증오가 혼재하는 기억을 길어 올렸다. 가족과의 인터뷰를 캠코더로 촬영해 이를 바탕으로 글을 써나갔다. 글을 쓰면서 떠올린 이가 있었다. 2013년 영화 토론 모임에서 알게 된 배우 곽진무였다. “모임 멤버 중 유일한 배우였죠. 당시 진무 형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환상의 빛>과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자신의 개인사를 엮어 발제한 내용이 떠올랐어요. 진무 형이라면 제 글을 이해해줄 것 같았어요.” 그는 아예 시나리오 주인공 이름을 ‘곽진무’로 바꾸고, 글을 곽진무에게 보여줬다.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정말 깊었어요. 저도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잃어서 공감 가는 면도 많았고요. 처음엔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결국 같이하기로 결심했어요.”

영화 속 진무는 조 감독의 분신과도 같다. 선반공으로 일하던 진무는 뇌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된다. 수술 뒤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진무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캠코더에 담기 시작한다. 어머니·형·누나를 찾아가 그들 모습을 캠코더에 담으며 묻어뒀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가 닿는다.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시네마달 제공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시네마달 제공
영화는 그 자체로 조 감독이 영화를 만든 과정과 닮았다. 영화 속 진무의 다소 복잡한 가족관계는 조 감독의 가족관계 그대로다. 진무는 조 감독이 가족을 인터뷰할 때 썼던 바로 그 캠코더로 영화 속 가족을 촬영한다. 영화 속 배경도 실제 조 감독 가족의 집이다. 진무가 찍은 캠코더 영상이 영화 속 중간중간 삽입됐는데, 이는 실제로 배우 곽진무가 찍은 것이다. 과도한 클로즈업과 흔들림이 많은 캠코더 영상은 멀찍이 떨어져 정적으로 담아낸 영화 전체의 톤과 대조된다. 뒤로 돌아누운 어머니의 모습 등을 담은 캠코더 영상은 진무의 심정을 고스란히 전하는 듯하다. 곽진무는 “영화 속 진무가 어떤 감정일까 계속 생각하면서 캠코더 영상을 찍었다. 가족 얼굴을 잔뜩 당겨 화면 가득 채우고, 그만 찍으라고 손사래 칠 때까지 집요하게 담겠다는 마음으로 찍었다”고 말했다.

퇴직금 1500만원을 들여 12회차 촬영을 마쳤지만, 개봉은 엄두도 못 냈다. 첫 편집본을 본 주변 반응은 다들 부정적이었다. 그래도 배우들에겐 보여줘야겠다 싶어 시사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 독립영화 배급사 시네마달 김일권 대표가 왔다. 김 대표는 영화를 칭찬하며 “마지막 엔딩을 제대로 완성하면 개봉할 수 있겠다”고 했다. 고무된 조 감독은 적금 500만원을 깨 전부터 생각해둔 엔딩을 추가 촬영했다. 진무가 아버지 묘를 이장하는 이 장면은 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엔딩으로 극찬받는다. 조 감독은 “엔딩을 찍고서야 비로소 아버지에 대한 묵은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시네마달 제공
영화 <작은 빛> 스틸컷. 시네마달 제공
영화는 지난 2018년 서울독립영화제 독불장군상과 무주산골영화제 뉴비전상(대상)·영화평론가상을 받았다. 장편영화 첫 주연을 맡은 곽진무는 2019년 전북독립영화제 배우상을 받았다. 개봉 3주차를 맞은 <작은 빛>은 7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8일 서울 서교동 케이티앤지 상상마당, 9일 서울 종로 에무시네마에서 감독과 배우가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를 마련한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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