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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당신의 시선이 누군가를 할퀴었다면?

등록 2006-01-04 17:08수정 2006-01-05 14:41

영화 ‘다섯개의 시선’

“인간이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본다.” 니체의 표현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을 따름인 나약한 존재라는 것”인데, 시선만큼이나 위약하고 고약한 것도 없다. 깨진 틈처럼 제 됨됨이를 어이없이 엿보이는 구실을 해서만은 아니다. 주관성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우리네 시선 안에선 손, 발톱이 숨어 자라기도 하는 탓이다. 그 시선에 할퀸 이들이 누구냐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여섯 감독의 인권과 차별을 주제로 한 영화들을 묶어 소개한 <여섯 개의 시선>(2003년)에 이은 두 번째 장편 옴니버스 <다섯 개의 시선>이 13일 개봉한다.

이유없이 날 선 누군가의 시선들에 베인 장애인, 비정규직, 조선족 등이 등장한다. 듣기만 해도 깔끄럽고 불편할 낱말들인지 모르겠다. 일상으로 스쳤던 그들의 풍경이 ‘믿음’ 이상으로 폐허라는 사실, 거기엔 당신의 책임도 있을 거란 속엣말을 보고 듣는 일은 더욱 그럴 것이다.

작품을 공여한 장진, 정지우, 류승완, 박경희, 김동원 감독은 그러나 퍽 대중적인 은유로 영화보는 맛을 높였다. 계도용 ‘기자재’가 아닌, 소재가 흔치 않은 ‘영화’라는 점은 <다섯 개의 시선>이 내세워도 좋을 미덕이다.

류승완 감독이 단 두 컷으로 가봉한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는 <… 시선>의 서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학원까지 졸업했다는 우식. 그가 쓰는 언어는 ‘한국 남성사전’에서 그대로 집자한 것인데, 가히 남자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자화상이 자기중심적이며 이중적이기 그지없다. 우식을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은 그가 술에 취해 무심코, 또는 본심으로 던진 차별적 언사에 상처받고 하나하나 떠난다. 백수와 고졸 친구가 있었고, 얼마전 커밍아웃을 한 동성연애자 친구도 있었다.

술집에서 마주친 종업원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식의 태도는 제 주관에 갇혀 휘두르는 시선의 칼이 더없이 무작위적이고 일상적임을 보이지만, 홀로 남겨진 채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라며 자기 정당성을 채집하려는 우식을 통해 그 허위를 통쾌하게 조소한다.

관객 입맛엔 <고마운 사람>(장진 감독)이 제일일 듯하다. 시국이 어수선한 때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붙잡힌 대학생 윤경신이 무차별적으로 고문을 당하지만, 되레 상여금이 깎인 채 밤낮없이 근무하는 비정규직 고문전담 수사관을 위로하며 둘이 나누는 우정과 연대를 장 감독만의 짠하면서도 익살스럽게 담아냈다.


이밖에 탈북 청소년의 비애를 흑백의 영상으로 펼친 <배낭을 멘 소년>(정지우), 다운증후군 은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박경희), 조선족 김원섭씨의 외로운 죽음을 추적한 <종로, 겨울>(김동원)이 우리의 시선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시네코아, 시네큐브, 상암·강변·부산 서면 씨지브이 개봉.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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