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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우리 모습 같은 찬실이, 주변에 천치삐까립니더~”

등록 2020-03-04 17:30수정 2020-03-05 02:35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피디의 낙천적 인생 극복기
45살 늦깎이 감독의 장편 데뷔작
대중·평단 사로잡고 시상식 휩쓸어

김초희 감독
“용기 내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
우리 영화 보고 내 얘기 같다며
끄덕끄덕하는 분들도 많아요”

강말금 배우
“나이 서른 늦게 시작한 연기
마흔에 첫 장편 주인공 됐네요
모든 과정이 큰 의미 될 것 같아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오른쪽)과 주연 강말금 배우가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영화 포스터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오른쪽)과 주연 강말금 배우가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영화 포스터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코로나19 여파로 시름 깊은 영화계에 위안이 돼줄 복덩이가 굴러왔다. 지난해 평단과 대중 모두 사로잡은 독립영화 <벌새>와 <메기>의 뒤를 이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5일 개봉)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씨지브이(CGV) 아트하우스상, 한국방송(KBS) 독립영화상을 휩쓴 데 이어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으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이 복덩이는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배우 강말금의 첫 장편 주연작이다.

“오늘 옷 잘 골랐네예. 배우는 이런 식으로 입어야 합니다. 한 푼이라도 벌라면예.” “감독님도 오늘 참 예쁘네예.” 정겨운 사투리로 서로를 칭찬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영화 포스터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에서 만난 둘은 자매처럼 친구처럼 만담 같은 수다를 떨었다.

영화는 돈도 집도 남자도 없고 일마저 똑 끊긴 영화 프로듀서 찬실(강말금)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번 생은 망했다며 낙담하다가도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해 살길을 찾는다. 그러던 중 소피의 프랑스어 교사 영(배유람)이 찬실을 설레게 하더니 자신을 ‘장국영’이라 우기는 비밀스러운 남자(김영민)까지 등장한다. 집주인 할머니(윤여정)는 무심한 듯 살뜰하게 찬실을 챙긴다. 찬실은 유쾌하고 낙천적인 태도로 어떻게든 일과 삶과 사랑을 이어가려고 고군분투한다.

영화 &lt;찬실이는 복도 많지&gt; 포스터. 영화사 찬란 제공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포스터. 영화사 찬란 제공

찬실의 모티브는 김 감독 자신에게서 가져왔다. 비디오대여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화에 빠져 23살에 영화감독을 꿈꾼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했다. 파리에서 어쩌다 홍상수 감독 영화 현장에 참여하게 된 그는 이후 프로듀서로 7년 넘게 홍 감독과 일했다. “프로듀서 일을 오래 하다 문득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만두고 뭘 할까 하다 마음속에 감춰뒀던 감독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두렵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무작정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45살 늦깎이 감독의 데뷔작은 이렇게 출발했다.

강말금은 대학생 때 연극동아리 활동을 하다 배우의 꿈을 꿨다. 하지만 대학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취업을 해야 했다. “6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다 ‘이젠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마음먹고 극단을 찾아갔어요. 나이 서른에 뒤늦게 기초부터 배운 거죠. 연극으로 먹고살 만하다 싶을 정도가 되니 어느덧 30대 중후반이더라고요. 틈틈이 드라마와 영화에도 출연하다 나이 마흔에 처음 장편영화 주인공이 됐네요.”

김 감독이 강말금을 알게 된 건 2018년 여름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였다. 김도영 감독이 <82년생 김지영>으로 장편 데뷔하기 전 만든 단편 <자유연기>를 보고 강말금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단다. “강 배우가 울면서 안톤 체호프 희곡 <갈매기>의 니나의 독백을 하는 걸 보고 ‘이 배우 안에는 진짜가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영화 &lt;찬실이는 복도 많지&gt; 김초희 감독(오른쪽)과 주연 강말금 배우가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영화 포스터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오른쪽)과 주연 강말금 배우가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영화 포스터 디자인 스튜디오 ‘프로파간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일주일 뒤 직접 만난 둘은 커피와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서울말을 쓰던 강말금의 입에서 은연중 부산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오자 역시 부산이 고향인 김 감독이 대번에 알아챘다. 김 감독은 찬실이 부산 사투리를 쓰도록 아예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그 덕에 찬실은 더더욱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로서의 친밀감과 현실감을 얻었다.

동향이어서 서로 더 끌렸던 걸까? “그보다는 우리 둘의 처지가 비슷해서 끌렸던 것 같아요.”(김 감독) “둘이 아니라 셋이죠. 찬실이까지.”(강말금) “우리 주변에 찬실이가 천지삐까립니다. 우리 영화 보고 내 얘기 같다며 끄덕끄덕하는 분들도 많고요.”(김 감독)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찬실에게 공감하고 용기를 얻을 법하다.

힘을 얻은 건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의지를 갖고 뭘 하려 해도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럼에도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져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이번에 큰 용기를 냈고 결국 영화가 완성돼 관객을 만나게 됐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감사해요.”(김 감독) “단역이나 조연 때는 촬영장에 가면 객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주연으로서 여유와 품위, 주인의식을 갖게 됐어요. 홍보를 위해 이렇게 인터뷰도 해보고요. 이 모든 과정이 저에게 큰 의미가 될 것 같아요.”(강말금)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두 사람에게도 커다란 복덩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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