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 워터스> 스틸컷. 이수씨앤이 제공
롭 빌럿(마크 러펄로)은 기업 전문 로펌 변호사다. 어느 날 두 노인이 대기업의 환경 파괴를 고발하겠다고 찾아온다. 롭은 다른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며 피하려 하지만, 노인들은 롭의 친할머니 소개로 왔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노인의 농장에 찾아간 롭은 거기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다. 소 190마리가 떼죽음을 당하고 마을 주민들의 이가 검게 변했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화학회사 듀폰이 독성 화학물질 피에프오에이(PFOA)를 무단 방출한 사실을 알게 된 롭은 이를 폭로하고 집단소송을 제기한다.
배우이자 환경운동가인 마크 러펄로는 2016년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에서 실존 인물 롭 빌럿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는 이 이야기야말로 자신의 신념을 담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 <벨벳 골드마인> <캐롤> 등으로 유명한 감독 토드 헤인스에게 연출을 제안하고,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에게 참여를 요청했다. 그는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파헤친 기자들의 실화를 그린 <스포트라이트>에서 주연을 맡은 바 있다. 마크 러펄로는 또 한번 실화를 바탕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 <다크 워터스>(11일 개봉)의 주인공을 맡았다.
영화 <다크 워터스> 스틸컷. 이수씨앤이 제공
듀폰이 순순히 잘못을 시인할 리 없다. 듀폰은 롭에게 산더미 같은 서류 폭탄을 안기는 등 시간 끌기 전략을 취한다. 롭은 업계의 압박과 함께 피해 지역 주민들로부터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듀폰이 지역민을 대거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롭은 길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그는 듀폰이 피에프오에이의 위험성을 일찌감치 인지하고도 이를 숨긴 채 프라이팬, 콘택트렌즈, 유아 매트 등의 원료로 사용했음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실제로 이는 2004년 세계 언론에 보도됐다. 영화에는 미국 <시엔엔>(CNN) <에이비시>(ABC)뿐 아니라 한국 <문화방송>(MBC)의 실제 뉴스 화면까지 쓰였다. 엄기영 앵커가 전하는 당시 보도는 이 문제가 우리에게도 직결돼 있음을 상기시킨다.
1998년 처음 문제를 제기한 지 17년 뒤인 2015년에야 신장암, 고환암 등 질병 피해자 3535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재판이 시작된다. 2017년 마침내 18억6천만원의 첫 배상 판결이 나고, 다른 배상 판결도 잇따른다. 듀폰이 지급해야 할 보상금은 모두 8천억원에 이른다. 2020년에도 롭의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듀폰 말고도 이 물질을 사용한 기업 쓰리엠(3M)과 듀폰에서 분사한 케무어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0년 넘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진중하면서도 섬세한 연출로 몰입도를 높인다. 롭 빌럿과 교감을 나눈 마크 러펄로의 연기에선 진정성이 담긴 무게감이 느껴진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전북 익산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 사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백혈병 분쟁 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