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매몰된 가장의 반나절
호랑이를 구하라(교 오후 1시50분)=보기 드물게 아버지들을 울렸던 영화다. 기성 세대가 겪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로 인한 좌절을 밀도있게 그린 존 아드빌슨(<록키>의 감독)의 1973년 수작. 골든 글러브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전우를 잃고 자신만 살아 있다는 죄책감, 아내와 딸로부터 느끼는 고립감으로 휩싸인 중산층 가장 해리 스토너(잭 레몬). 그가 운영하는 의류 공장도 자금 압박으로 휘청댄다. 숨막히는 현실이다. 한 줌 아름답고 순수했던 추억은 그가 선 곳에서 너무 멀다. 공장 방화를 통한 보험 사기극을 꾸미는데 방화범에게 돈을 건네고 오는 길, “멸종 위기의 시베리아 호랑이를 구하자”란 서명운동에 이름을 올린다. 영화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베트남전 반전 운동과 인권 운동으로 떠들썩한 가운데에도 안주하고 부패한 1970년대 미국의 기성세대를 주목하고 있지만, 결국 구해야 할 ‘호랑이’는 일상적으로 신념을 거역하게 되는, 순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모든 시대의 아버지나 다름없다. 영화는 그 ‘아버지’의 하루 반나절을 조명한 것. 잭 레몬의 연기가 일품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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