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신학 전공 영화감독 최종태씨
“영화를 보고 저 산 너머 하늘도 바라보고 삶의 본질도 응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로 선종 11주기를 맞은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의 어린 시절 모습을 그린 영화 <저 산 너머>를 연출한 최종태(55) 감독은 ‘개봉 소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 힘이 작용했고, 나는 하나의 도구로 쓰였을 뿐 내가 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성당 문도 닫힌 마당에 누가 추기경 영화를 볼까 걱정했는데, 개봉에 앞서 23일부터 가톨릭 미사가 재개된다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저 산 너머>의 최 감독을 22일 경기 고양시 일산 한양문고에서 만났다.
그는 “이 영화는 참 이야깃거리가 많다”며 기획단계부터 배우 캐스팅, 제작비 마련, 촬영 에피소드까지 통상 제작과정과는 달랐던 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줬다.
그는 9년 전 이 영화를 기획했다. 평소 종교의 벽을 넘어 사랑을 실천해온 김 추기경의 삶과 정신에 매료된 최 감독은 김 추기경의 책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고 정채봉 동화작가의 책 <바보 별님>을 만났다. 이 책은 정 작가가 김 추기경과의 대화를 엮은 글로 추기경이 선종한 2009년 출간됐다. 이후 김 추기경 10주기인 2019년 원래 제목 <저 산 너머>로 바뀌어 이 영화의 원작이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배우와 투자자를 찾았지만 벽에 부딪히자 포기했다. 그러다 2018년 ‘내년 10주기에 맞춰 다시 도전해보자’며 친구 이성호씨가 제작자로 합류해줬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두터웠다. “백방으로 뛰었지만 극단적인 상업주의 영화의 홍수 속에서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에 선뜻 출연하겠다는 배우도, 투자자도 나타나지 않았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오디션 비용은 마련했지만 제작비는 암담했어요.”
그러던 참에 서울대교구에서 사회사목을 맡은 유경촌 보좌주교로부터 ‘주님은 예상치 않은 방법으로 도와주시니 용기를 내라’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받았다. 그로부터 1주일 뒤 기적처럼 투자자가 나타났다.
일산에 사는 이웃인 백장현 한신대 교수에게 하소연을 하니, 한 마을에 사는 건축가 남상원(63) 아이디앤플래닝그룹 대표를 소개해줬다. 불교 신자이면서도 평소 김 추기경을 존경해온 남 대표는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 약 40억원의 제작비 전액 투자를 약속했다.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학 후배인 봉준호 감독이 어린 수환의 어머니 역으로 배우 이항나를 추천해줬고, 평소 친분이 두터운 배우 안내상, 강신일 등이 출연을 약속했다. 수환 역의 아역배우로는 260대 1의 경쟁을 뚫고 이경훈(당시 10살)이 뽑혔다. “오디션을 시작하자마자 추기경님을 닮아 인중이 길고 똘망하게 생긴 아이가 나타나 속으로 옳다구나 했죠.”
고 김수환 추기경 어린 시절 그린
‘저 산 너머’ 코로나 속 30일 개봉
원작은 고 정채봉 작가 ‘바보별님’
“추기경과 모친이 중심인 가족영화” 40대초 공황장애 겪고 가톨릭 귀의
2012년 영화 ‘해로’로 대종상 신인상
그가 이 영화를 기획한 것은 산업화한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영성과 순수함을 생각해보자는 마음에서 비롯됐단다. “우리 민족은 기본적으로 영성, 즉 하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죽음에 대해 가치관을 크게 뒀는데 언제부턴가 영성이 사라져가고 있어요. 또 경쟁사회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고,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로워졌는데 삶은 더 초라해져가고 있어요.” 세트장은 충남 논산에 만들었고, 전국을 돌며 사계절 풍경을 스크린에 담았다.
연세대 신학과를 나온 최 감독은 40대 초 공황장애를 앓으면서 죽음의 공포 속에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린아이지만 추기경의 생각, 메시지를 드러내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촬영에 앞서 추기경이 사제 서품을 받은 대구 계산성당에 가서 성찬식에 참석했는데 잘할 수 있을까 걱정 때문에 불안해 패닉상태가 됐어요. 그러다 추기경이 서품식 받을 때도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그가 했던 것처럼 ‘주여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한 뒤 마음이 편해졌죠.”
추기경의 삶을 그렸지만, 영화는 종교영화가 아니라 추기경과 어머니 이야기가 중심인 가족영화라고 했다. 추기경과 불교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추기경은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법정 스님과 매우 가까웠어요. 영화 투자자도 불교 신자고, 영화 마지막에 김대건 신부가 동굴에서 강론하는 장면은 선운사 도솔암에서 촬영했어요.”
2012년 영화 <해로>로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그는 이번 영화의 상징으로 ‘옹기’와 ‘저 산 너머’를 꼽았다. “수환의 아버지는 당시 천한 직업인 옹기 장수였는데 옹기의 쓰임은 빈자리에 있어요. 추기경님은 ‘우리들 마음에도 빈 자리가 있다. 그 빈 자리는 재물이나 명예로 채워지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다’고 늘 말씀하셨죠. 정 작가님이 책 제목을 ‘저 산 너머’로 정한 것은 추기경이 어린 시절 해질녘 노을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함께, 불교에서 말하는 언덕 저편 너머 깨달음의 세계(바라밀)란 뜻도 담겨있지 않나 싶어요.”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영화 <저 산 너머>를 연출한 최종태 감독. 박경만 기자
‘저 산 너머’ 코로나 속 30일 개봉
원작은 고 정채봉 작가 ‘바보별님’
“추기경과 모친이 중심인 가족영화” 40대초 공황장애 겪고 가톨릭 귀의
2012년 영화 ‘해로’로 대종상 신인상
최종태 감독이 <저 산 너머> 촬영장에서 출연 아역 배우들과 함께 했다. 사진 최종태 감독 제공
4월30일 개봉하는 영화 <저 산 너머> 포스터. 제작사 리온픽쳐스 제공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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