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콜라
1999년 1호가 생긴 이래 불과 5년여 만에 스타벅스는 매장수가 145곳으로 늘어났다. 외국 사례에 견주면, 번개가 콩을 볶는 속도다. 스타벅스의 커피를 찾는 이가 반, 그곳의 풍광, 분위기 따위 ‘격’을 소비하는 이들이 또 반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상가 주인들은 이를 건물에 들여놓으면 분양가가 뛴다며 스타벅스 유치에 열심이다.
비슷한 때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국내에 생겼다. 1998년, 동쪽 한강 앞에 우뚝 선 강변씨지브이(CGV)다. 사실 복수상영관으로만 치면 1987년 문을 연 다모아 극장(3개관)이 먼저지만, 상가와 위락 시설을 끼고 있는 서구형 멀티플렉스는 ‘강변’이 처음인 것이다. 지금은 씨지브이,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3개 대표 브랜드의 멀티플렉스만도 64곳에 이른다. 빠르다.
이제 대개는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고 하지 않고, 씨지브이나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에서 봤다고 한다. 이들이 들어선 대형 상가들 또한 값어치가 뛴다. 유치에 열심이고, 브랜드 극장 또한 목 좋은 곳에 먼저 들어서기 위한 기싸움이 팽팽하다.
지난해 가을께다. 동대문 지역에 메가박스와 씨지브, 롯데가 서로 들어가려고 맞붙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넘어갔을 곳이다. 하루 유동 인구가 80만~100만명에 이르는 데다 복판을 젊은 층이 메우질 않는가. 그런데도 거평프레야타운 안의 엠엠씨(MMC) 극장 혼자 독점하고 있는 실정이라 극장업자들에겐 서울에서 몇 안 되게 남은 금밭. 여기선 극장도 24시간 돌아갈 수 있다. 실로 자존심 싸움이었다. 만세를 부른 쪽은 ‘강남파’ 메가박스. 한해 600만명이 드나들어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메가박스 시네플렉스(강남 코엑스)를 종가로 삼는, 그 메가박스다.
씨지브이는 분을 삭히며 발걸음을 돌렸을 터다. 최대 효자 지점인 강변씨지브이를 포함해 서울에 있는 8곳이 모두 강북·서에 있는 그야말로 강북의 지존이, 공개입찰 때 메가박스가 부른 ‘최고가’에 가히 기가 눌렸을 법하다. 메가박스는 대략 600억원을 들여 2008년께 지금 짓고 있는 굿모닝시티 건물 두 개 층에 자리를 잡을 요량이다.
하나의 징후가 될 것 같다. 올해를 기점으로 메가박스는 강북으로, 씨지브이는 강남으로 기수를 돌려 전력 진군한다. 메가박스는 올해 아파트 밀집 지역인 목동과 서부지역 최대 상권인 신촌에 지점을 연다. 반면 씨지브이는 오는 2월 압구정 지점을 열고, 내년 상반기에 강남 지점까지 연다. 특히 압구정 지점은 강북의 강변 지점처럼 강남의 거점으로 상징화할 참이다.
무서운 건 이런 것이다. 목동은 씨지브이와 메가박스가 2~3분 거리로 붙게 되지만, 그 넓은 강원도는 지난해 겨우 문을 연 원주롯데시네마를 빼고서 멀티플렉스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자본의 논리가 이렇다. 연간 150만~200만명 정도가 극장을 찾아야 기본형 멀티플렉스(6~8개관)가 들어설 수 있다. 200억원에서 600억원까지 드는 거대 사업이라 메가박스도 씨지브이도 당분간 강원도로 갈 계획은 없다고 한다. 멀티플렉스는 스타벅스와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이런 게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불평등)처럼 ‘멀티플렉스 디바이드’라는 신조어만 만들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