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천스텔라>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인터스텔라>, 아니 <인천스텔라>가 떴다. 지난 9일 개막한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다. 11일과 14일 두차례 상영회는 예매 시작 45초 만에 매진됐다. 지난 11일 저녁 경기도 부천 씨지브이(CGV) 소풍에서 첫 상영 뒤 열린 ‘관객과의 대화’(GV)에선 대다수 관객이 자리를 지키며 감독·배우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누가 봐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 향취가 물씬 나는 수상쩍은 영화에 왜 이렇게 폭발적인 관심이 몰린 걸까?
실마리는 영화를 연출한 백승기 감독에게 있다. 백 감독은 장편 데뷔작 <숫호구>(2012)부터 <시발, 놈: 인류의 시작>(2016), <오늘도 평화로운>(2019), <인천스텔라>까지 연출작 4편 모두 부천영화제에 초청되는 쾌거를 이뤘다. 현직 미술 교사인 그는 ‘누구나 일상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실천해왔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 프리퀄(이전 이야기)로 기획한 <숫호구>는 500만원으로 만들었고, 인류의 기원을 탐구한 <시발, 놈…>은 네팔 현지 촬영까지 하고도 2천만원이 채 안 들었다. 특유의 뻔뻔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유머로 B급을 초월한 ‘C급 영화’라는 새 영역을 개척한 백 감독이 우주 공상과학(SF) 영화에 도전했다 하니 호기심이 폭발한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 포스터.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백 감독이 영화를 처음 기획한 건 사실 <인터스텔라> 개봉 전이다. 2014년 <시발, 놈…> 촬영 현장에서 주연배우 손이용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시놉시스를 만들었다. 우주로 나간 아들이 블랙홀에 빠져 시공간을 초월한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난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11월 참고삼아 <인터스텔라>를 보러 극장에 간 백 감독과 손이용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망했다. 우리가 만들려던 영화와 너무 비슷해.” 제작을 미루고 어떻게든 다른 이야기로 바꿔보려 했지만, 자꾸 미련이 남고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올해 초 결심했다. ‘어떻게 만들어도 <인터스텔라>를 베꼈다는 오명을 피할 수 없을 바에야 정면 돌파하자.’ 제목을 아예 <인천스텔라>로 붙이고 대놓고 패러디와 오마주를 하기로 했다. 제목 덕인지 인천영상위원회 공모에 붙어 제작비 5천만원도 지원받았다. 다만 백 감독은 “영화에서 인천은 사람인(人) 하늘천(天)으로 쓴다”며 “사람과 우주를 잇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영화 <인천스텔라>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손이용이 연기한 주인공 기동은 아시아항공우주국(아사·ASA) 탐사대원이다. 동료이자 아내인 선호가 출산 도중 목숨을 잃자 아사를 떠나 홀로 딸 규진을 키운다. 어느 날 기동은 다른 차원에서 온 듯한 선호를 만나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아사는 기동에게 비밀리에 개발한 우주선 ‘인천스텔라’ 조종사 자리를 제안하고, 기동은 선호를 만날까 하는 기대감에 수락한다. 딸 규진은 우주로 간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뜻밖의 신호를 알아채고 행동에 나선다.
백 감독은 <인천스텔라>가 코미디가 아니라 진지한 정극이라고 강조했다. “가족 신파극을 추구하며 아침 드라마를 참조했다”고 말했다. 손이용은 웃음기를 지우고 ‘폭풍오열’ 연기까지 선보인다. 첫 상영회에서도 손이용은 영화를 보며 펑펑 울었다. 코미디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다소 당황하면서도 “C급이라기엔 너무 고퀄이다” “의외로 진지한데 웃기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영화 <인천스텔라> 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정극이라 해도 ‘백승기표 유머’는 여전하다. 인천 월미공원 전망대를 아사 본부라고, 자동차 정비소를 우주선 비밀기지라고 뻔뻔하게 우긴다. 우주선은 실제로 1980년대에 생산된 현대차 ‘스텔라’다. 우주비행사들은 오토바이 헬멧, 권투선수용 은색 땀복, 구명조끼에 고무장화를 신었다. 기동과 선호가 바닷가 석양을 배경으로 개다리춤을 추는 장면은 이병헌·이은주 주연 <번지 점프를 하다>의 왈츠춤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그 영화를 워낙 좋아해 충남 태안의 같은 장소에서 장인정신을 발휘해 똑같이 찍었다”고 백 감독은 말했다.
정식 개봉 계획도 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로 변화한 환경을 고려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 다양한 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백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우리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외영화제에 최대한 많이 내보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