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대위로 나온 배우, 누구지?”
개봉 7일 만에 200만 관객을 끌어모으며 질주 중인 영화 <반도>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설 때 들리는 관객들의 수군거림이다. 누리꾼의 영화 후기에서도 ‘구교환의 발견’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2008년 데뷔한 13년차 배우 구교환이 <반도>로 뒤늦게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많은 분의 관심이 놀랍고 신기해요. 제가 유명해졌다고들 하는데,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구교환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 대위는 좀비 떼에 점령당한 반도에서 나쁜 짓을 일삼는 631부대의 지휘관이다. 언뜻 유약하고 불안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잔혹한 모습으로 돌변하는 서 대위를 구교환은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해냈다.
영화 <반도>에서 서 대위 역을 맡은 구교환. 뉴 제공
관객들 사이에선 전사가 드러나지 않는 서 대위 캐릭터가 다소 평면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대본을 보고 ‘서 대위의 지난 4년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4년 전에는 631부대를 이끌며 민간인을 구조했고, 가족도 있었을 테죠. 하지만 이후 여러 일을 겪으며 마음이 붕괴했을 거예요. 그런 과정을 상상하며 연기했어요. 아니, 그런 서 대위를 만났어요.”
그는 이전에도 ‘만났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2017년 <꿈의 제인> 개봉 당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트랜스젠더 제인을 연기한 게 아니라 “만났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등 여러 상을 휩쓸었다. 구교환은 “그때 제인을 만난 것처럼 이번엔 서 대위를 만났는데, 무서웠다”며 웃었다.
영화 <꿈의 제인>에서 트랜스젠더 제인 역을 맡은 구교환. 엣나인필름 제공
<꿈의 제인> <메기> 등으로 독립영화계 스타가 된 그가 상업영화에 비중 있는 역으로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분리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둘 다 관객을 만나는 태도가 똑같고, 영화는 관객을 만나면서 완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반도>는 그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극장에서 <부산행>을 보며 열광했거든요. 그 세계관을 공유하는 후속작에 출연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런데 제안이 왔으니 해야죠.”
구교환은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에도 캐스팅돼 촬영을 마쳤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대형 상업영화에 잇따라 출연한 것이다. 그는 “궁금하고 호기심 가는 인물이라면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가리지 않고 연기하고 싶다. 영화든 드라마든 매체도 상관없다”며 다양한 활동을 펼칠 뜻을 내비쳤다.
배우로 맹활약하고 있지만, 원래 그는 연출, 제작, 심지어 편집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누벼왔다. 직접 연출·출연한 단편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디브이디(DVD)를 주지 않는가?>로 2014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희극지왕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어떤 게 본업이냐는 질문에 그는 “어느 하나를 메인으로 하기보단 영화를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분야마다 날 흥분시키는 지점이 있다. 편집할 땐 촬영 작업을 복기하며 컷을 이어붙일 때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메기>를 연출한 이옥섭 감독과는 오랜 영화계 커플로 유명하다. 둘은 연인이자 영화 동료로 <연애다큐> <플라이 투 더 스카이> <걸스온탑> 등 여러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또 유튜브 채널 ‘[2X9HD]구교환X이옥섭’을 운영하며 자신들 작품을 올리고 있다.
구교환의 높고 가는 목소리 톤은 배우로서 가장 큰 개성이자 무기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별다르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제 목소리가 어떻다는 생각을 하면 더 경직될 것 같아서요.” 일부러 만들어내는 대신 그저 있는 대로, 느끼는 대로 배역에 스미는 구교환다운 대답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