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1963년 모습. AP연합뉴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생존자도 결국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한국에서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역으로 유명한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2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104.
이날 에이피(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드 하빌랜드의 홍보담당 관계자는 “그가 파리의 자택에서 평화롭게 자연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1950년대 초부터 파리에서 거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드 하빌랜드는 1930년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여배우 중 한 명이다. 1916년 일본 도쿄에서 영국인 부모 밑에 태어난 뒤 3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19세였던 1935년 막스 라인하르트 감독의 영화 <한여름 밤의 꿈>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4년 뒤 당대를 풍미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명성을 얻었다. 당시 비비언 리가 연기한 스칼렛 오하라와 정반대로 차분하고 우아한 성격의 멜라니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며 호평을 받았다.
19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열연한 ‘멜라니’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왼쪽)와 ‘스칼렛’ 비비안 리(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이후 드 하빌랜드는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로 각각 1947년과 1950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거머쥐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배우들의 입지’를 법적으로 보장받는데도 일조했다. 1943년 영화사 워너브라더스가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을 묶어두려 하자 드 하빌랜드는 법원에 소송을 내어 승소했다. 당시 법원은 “어떤 제작사도 배우의 동의 없이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는 취지로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은 이후 ‘드 하빌랜드 법’으로 불리며, 할리우드의 권력이 대형 영화사가 아닌 배우에게로 이동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드 하빌랜드는 2008년엔 미국 정부로부터 국가예술 훈장을,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각각 받는 등 배우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1950년 두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할리우드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AP연합뉴스
‘자매 배우’로 활약했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왼쪽)와 조앤 폰테인(오른쪽)은 ‘앙숙’ 사이로도 유명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드 하빌랜드는 할리우드에서 ‘여동생과의 불화’로도 유명세를 치렀다. 그의 여동생은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 <서스픽션> 등에 출연한 고 조앤 폰테인(2013년 별세)이다. 두 사람 모두 아카데미상을 받는 등 ‘배우 자매’로 이름을 날렸지만, 서로 사이가 나빠 의절할 정도로 ‘앙숙’이었다고 전해진다. 1942년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두 자매 모두가 이름을 올렸지만, 여우주연상이 동생인 폰테인에게 돌아간 일화는 유명하다. 외신들은 두 자매가 1975년 어머니의 별세 이후 말조차 섞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여동생이 96살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드 하빌랜드는 “너무나도 슬프다”는 말로 동생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로이터 통신은 드 하빌랜드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한 마지막 생존자였다”고 전했다. 할리우드 부흥기를 이끈 또 한 명의 별이 진 셈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