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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신세계’ 그림자 어른대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록 2020-07-29 17:58수정 2020-07-30 02:36

황정민·이정재 7년만의 재회…이야기 힘 약하지만 액션은 강점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인남(황정민)과 레이(이정재)가 싸우는 모습. 호호호비치 제공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인남(황정민)과 레이(이정재)가 싸우는 모습. 호호호비치 제공

마지막이다. 청부 살인도 이것으로 끝이다. 대상은 일본 야쿠자 도쿄지부장. 그의 손에 “죽은 여성이 한둘이 아니”고, “악질 중의 악질”이란다. 청부 살인자에게 돈 이외에 명분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어찌 됐든 죽어 마땅한 자라는 소리일 게다. 암살자는 이내 야쿠자의 집에 그림자처럼 숨어들어 목표물과 그 부하들의 숨통을 단숨에 끊는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생애 마지막 청부 살인을 하는 암살자 인남(황정민)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인남은 조국에서 버림받은 국가정보원 출신 요원으로, 과거의 자신을 지우고 일본에서 암살자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삶의 의지는 시들하고, 웃음은 잃어버린 지 오래다. 꿈이 하나 있다면, 풍진세상을 뒤로하고 머나먼 파나마 공화국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

그렇지만 영화는 마지막 미션을 끝낸 이 잿빛 암살자를 파라다이스가 아닌 타이 방콕으로 기어이 돌려세운다. 인남이 알지 못했던 9살 딸의 존재와 그의 실종 사건을 등장시키면서다. 딸을 찾기 위해 인남은 방콕으로 향하고, 인남한테 형을 잃은 ‘인간 백정’ 레이(이정재) 역시 그를 쫓아 방콕을 찾으면서, 총칼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영화 &lt;다만 악에서 구하소서&gt;의 한 장면. 인남(황정민)이 일본 야쿠자를 암살한 뒤 창밖을 보고 있다. 호호호비치 제공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한 장면. 인남(황정민)이 일본 야쿠자를 암살한 뒤 창밖을 보고 있다. 호호호비치 제공

<다만…>은 ‘납치된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와 ‘형을 살해한 자에게 복수하려는 동생’의 추격 액션극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이들의 싸움은 처절하다. 2013년 개봉해 ‘한국형 언더커버 영화의 교본’으로 불린 <신세계>(468만명)의 황정민·이정재가 7년 만에 재회한 작품으로 일찌감치 관심을 모았다. 두 배우의 투샷과 장르적 유사성 탓에 <신세계>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 또한 안고 있다. 하지만 ‘거리두기’를 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이 영화는 <신세계>의 명장면인 ‘황정민의 엘리베이터 액션 장면’까지 유사하게 담으며 관객의 몰입을 반감시킨다.

이야기의 힘 또한 약하다. 인남의 부성애야 그렇다 치더라도, 영화의 핵심축인 ‘절대 악’ 레이의 복수심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한동안 연을 끊고 지내 아무도 (형제인지조차) 몰랐던” 상황에서 동생이 “지 형 죽인 놈을 찾겠다”고 왜 그토록 집요하고 무자비한 추격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고맙게도 관객 대신 극 중 타이 현지 범죄조직의 보스가 레이에게 묻는다. “왜 그(인남)를 그렇게 죽이려고 하는 거야?” 이에 대한 레이의 답은 이렇다. “이유는 중요한 게 아니야. 이제 기억도 안 나네.”

영화 &lt;다만 악에서 구하소서&gt;에서 인남(황정민)을 집요하게 쫓는 레이(이정재). 호호호비치 제공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인남(황정민)을 집요하게 쫓는 레이(이정재). 호호호비치 제공

이 영화의 미덕은 시원하게 휘몰아치는 액션이다. 황정민과 이정재의 폭발하는 연기 대결과 ‘스톱모션 기법’으로 촬영된 영상은 사실적인 액션 쾌감을 선사한다. 스톱모션 기법은 배우들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정지된 상태에서 여러번 찍은 뒤, 이미지를 연속으로 이어붙이는 기법이다. 통상 액션 장면은 배우들의 합과 카메라 각도를 조절해 때리고 맞은 것처럼 표현하지만, 이 영화에선 주먹이 직접 상대의 얼굴에 닿기에 타격감이 살아 있다.

인남의 조력자인 박정민(유이 역)의 연기 변신은 영화의 보너스다. 등장부터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이는 그는 인남과 레이의 무자비한 싸움 속에서 웃음과 감동을 주며 보석처럼 빛난다.

영화 &lt;다만 악에서 구하소서&gt;에서 레이(이정재)의 집요한 추격을 받는 인남(황정민). 호호호비치 제공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이정재)의 집요한 추격을 받는 인남(황정민). 호호호비치 제공

이 작품은 ‘악인’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홍원찬 감독은 “나락으로 떨어진 인물이 누군가를 구하면서 본인도 구원받는 뼈대로 영화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놓은 악의 세상에서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처절히 몸부림치는 인남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 제목이기도 한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이 쉴 새 없이 떠오른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8월5일 개봉, 15살 이상 관람가.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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