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상업영화들이 몸을 사리는 동안 그나마 극장가를 지킨 건 독립예술영화들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들 해요. 인디그라운드가 그들의 새로운 비빌 언덕이 되려고 합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다산동 인디그라운드 사무실에서 만난 조영각 인디그라운드 센터장이 말했다. 인디그라운드는 지난 8월28일 문을 연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설립했고,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가 운영한다. 조 센터장은 “국내 독립영화 제작 역량은 충분히 쌓였지만, 완성된 영화가 관객들과 만나는 건 여전히 힘들다”며 유통배급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일을 하는 단체가 과거에 없었던 건 아니다. 한독협은 2007년 영진위 지원을 받아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를 설립하고,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를 개관·운영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 영진위의 태도가 바뀌면서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는 2011년 초 사라졌다. 그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가 9년 만에 인디그라운드로 부활한 셈이다.
지난 8월28일 열린 인디그라운드 개소식. 왼쪽부터 안신영 문화체육관광부 과장,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조영각 인디그라운드 센터장, 이지연 인디그라운드 총괄 매니저,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인디그라운드 제공
1990년대 초부터 독립영화계에 몸담으며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영진위 위원 등을 거친 조 센터장 얘기를 들어보면, 1년 동안 만들어지는 독립 장편영화 150~200편 가운데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40~50편에 그친다. 나머지 100~160편은 관객을 만날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한다.
“상업성이 없거나 실험적인 영화들이 외면받는 현실 속에 독립영화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독립영화는 다양성이 생명인데, 극장에 걸릴 만한 엇비슷한 영화들만 늘고 있어요. 극장 개봉을 못 해도 영화를 보여줄 다른 길이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더 다채로운 독립영화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인디그라운드가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온라인 유통과 ‘커뮤니티 시네마’라 부르는 공동체 상영이다. 인디그라운드는 오는 12월 공공온라인플랫폼을 선보일 예정이다. 독립예술영화 포털 사이트 같은 개념으로, 개봉 독립예술영화 정보와 각종 영화제 소식, 데이터베이스 등을 모아 보여준다. 또 독립예술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도 한다. 기존에 서비스하고 있는 아이피티브이(IPTV)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대해선 독립예술영화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관련 기획전을 지원할 계획이다.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드 로고. 인디그라운드 제공
오프라인에서는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활성화 사업과 함께 커뮤니티 시네마를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개인이나 단체가 학교, 카페, 독립서점, 공유공간 같은 곳에서 공동체 상영을 할 수 있도록 이달 중 공모 신청을 받아 지원할 예정이다. 또 공동체 상영 경험이 없는 개인이나 단체를 위해선 교육·컨설팅도 진행할 계획이다. 조 센터장은 “독서모임을 하듯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거나 독립영화를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인디그라운드는 오는 7일까지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작품 공모 접수를 진행 중이다. 장편 20편, 단편 50편을 선정해 장편에는 유통지원금 500만원씩, 단편에는 200만원씩을 준다. 선정된 70편은 공공온라인플랫폼에서 1년 동안 순차적으로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공동체 상영을 신청하면 영화 제공은 물론 경비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지원센터 인디그라운드 라운지. 인디그라운드 제공
오는 19일부터 11월 말까지 인디그라운드 개관 기념 온라인 상영회도 연다. 네이버 인디극장을 통해 <벌새> <메기> <우리들> <돼지의 왕> <공동정범> <김군> 등 지난 10년 동안 주목받았던 독립영화 10편을 순차적으로 무료 상영한다. 또 인디그라운드 라운지에서 개관 기념 특강도 연다. 독립영화 배급 경험이 많은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10월29일), 공동체 상영 실험을 여러 차례 한 <바람의 언덕>의 박석영 감독(11월5일), 김정석 한국영화디지털유통협회 대표(11월12일)가 강사로 나선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참가 신청은 누리집(
indieground.kr)에서 하면 된다.
“독립영화는 우리를 즐겁게 하지만은 않습니다. 사회의 숨겨진 치부를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죠. 이는 독립영화의 사회적 역할이기도 합니다. 물론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독립영화도 많습니다. 숨겨진 맛집처럼 우리끼리만 알고 즐기기엔 아까운 독립영화들이 꼭 극장이 아니어도 생명력과 가치를 길게 끌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목표입니다. 독립예술영화의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겠습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