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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눈썹에 초파워숄더…1995년 최신유행 따라잡기

등록 2020-10-20 17:38수정 2020-10-21 02:05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속 디테일]
김영삼 정부 ‘국제화 시대’ 열풍 속
대기업 고졸 사원들의 고군분투기

동묘시장서 공수한 ‘장만옥 스타일’
386 컴퓨터·커피 깡통·서류철 등
사소한 소품까지 90년대 모습 재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할리우드에 원더우먼·캡틴마블·블랙위도가 있다면, 우리에겐 삼진그룹 8년차 베테랑 말단 사원 이자영(고아성)·정유나(이솜)·심보람(박혜수)이 있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이들 삼총사는 슈퍼히어로 부럽지 않은 맹활약을 펼치며 사내 비리를 고발하고 회사를 위기로부터 구해낸다. 영화는 1995년을 배경으로 했는데, 당시 시대상과 의상·소품 등을 세밀하게 재현한 대목이 눈에 띈다. 그 디테일을 하나하나 파헤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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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토익 점수에 달렸소이다

이자영·정유나·심보람은 상고를 졸업하고 대기업 삼진전자에 취업한 고졸 사원이다. 입사 8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커피 타기, 서류 정리, 영수증 입력 등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말단 사원이다. 이들은 남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같이 회사에 나온다. 삼진전자가 고졸 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토익 강좌를 개설했기 때문이다. 새벽 수업을 듣고 토익 점수 600점을 넘기면 대리로 승진시켜준다는 약속을 믿고 이들은 영어 공부에 매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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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993년 김영삼 정부는 ‘국제화 시대’를 부르짖었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영어 공부 열풍이 불었고, 거리에는 영어학원이 넘쳐났다. 기업도 바람에 올라탔다. 임직원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고 승진과 연계하는 사례들이 생겨났다. 이는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95년 9월24일치 <한국경제>에는 ‘기업들 “승진하려면 영어 공부하라”…외국어 사냥 붐’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를 보면, 현대·삼성·엘지 등 대기업들이 임직원들에게 영어 공부를 하도록 지원하고 토익 점수를 직급별 승진을 위한 커트라인으로 내걸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이런 움직임에서 출발한 영화다. 시나리오 초고를 쓴 홍수영 작가는 실제로 1990년대에 기업이 고졸 사원을 대상으로 개설한 토익반 강사로 일했다. 그는 당시 경험을 시나리오에 녹여냄으로써 밑바닥에서 고군분투하는 ‘을’들의 통쾌한 반란을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게 그려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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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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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미로 승화한 90년대 패션

영화를 보면, 사복을 입은 대졸 사원들과 달리 고졸 사원들만 유니폼을 입는다. 당시엔 이렇게 복장에서부터 차별이 있었다. 윤정희 의상실장은 90년대 유니폼 분위기를 되살리되 조금은 세련된 요소를 넣어 영화에 밝은 색깔을 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고른 색이 요즘은 유니폼에 잘 쓰지 않는 자주색이다. 윤정희 실장은 “자주색 하면 촌스러운 느낌이 들 수 있어, 디자인에 더욱 신경 썼다. 조끼를 브이(V)넥이 아니라 유(U)자 모양으로 파서 좀 더 여성스럽고 촌스럽지 않게 디자인 작업을 했다”고 전했다.

회사 바깥에서 유니폼 아닌 사복을 입는 장면에선 90년대 레트로 스타일을 선보인다. 특히 모델 출신인 이솜은 직접 서울 동묘시장에서 구제 옷을 뒤지며 어깨를 잔뜩 부풀린 파워 숄더, 미니스커트, 롱부츠 등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는 “홍콩 배우 장만위(장만옥)의 90년대 사진과 우리 엄마가 1995년에 찍은 사진을 보며 그때 패션을 참조했다. 그 사진 그대로 옷을 입고 나온 장면도 있다”고 귀띔했다. 머리도 당시 유행하던 블루블랙 색채로 염색하는가 하면, 갈매기 눈썹을 그리는 등 화장법도 그 시절 유행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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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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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하게 다른 육개장 사발면

영화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소품 하나에도 제작진은 세심하게 신경 썼다. 우선 90년대 사무실 분위기를 내기 위해 386 컴퓨터, 각종 서류철, 스탬프, 인스턴트 커피 깡통 등을 마련했다. 삼진 로고를 복고 느낌으로 만들어 여기저기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배정윤 미술감독은 “90년대 기업 로고들을 연구해 삼진의 클래식한 로고를 디자인했다. 이를 시계·종이컵부터 서류철에 붙은 작은 네임태그에까지 다 집어넣어 삼진그룹의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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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먹는 장면에서도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디테일에 집착했다. 지금도 판매되는 육개장 사발면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언뜻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랐던 그 당시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뚜껑을 따로 만들었다. 노점에서 떡볶이를 먹는 장면에선 이쑤시개가 아니라 포크를 쓰도록 했다. 배정윤 감독은 “당시 노점상은 이쑤시개를 안 썼다는 걸 누군가가 기억해내서 우리끼리 무척 만족해하며 포크로 먹는 걸로 바꿨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할 만큼 사소한 거라도 디테일을 살리는 일이 재밌었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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